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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랍 벨의 책 <사랑이 이긴다>가 제기하는 천국과 지옥에 대한 문제를 화두로 삼은 좌담회가 10월 7일 서울 명동 청어람에서 열렸다. ⓒ뉴스앤조이 백정훈 |
랍 벨의 <사랑이 이긴다>(포이에마)는 기독교 신앙을 천국과 지옥에 대한 관심으로 한정하는 것을 논박한다. 그에 따르면, 복음은 지금 이곳에서 어떻게 사느냐에 관련됐다. 천국과 지옥은 복음의 핵심적인 내용이 아니다. 랍 벨의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 "복음은 그렇게 작지 않다."
<사랑이 이긴다>가 말하는 내용을 주제로 10월 7일 서울 명동 청어람에서 좌담회가 열렸다. (관련 기사 : 천국과 지옥, 논쟁은 없다?) 좌담회 패널들도 랍 벨의 주장에 동의했다. 패널들은 구원의 주도권이 하나님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불신자는 지옥에 가느냐"는 질문은 인간이 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또 천국과 지옥을 공간의 개념으로만 이해하기 때문에 한국교회가 지금 이 땅에서 살아 내야 할 하나님나라에 대해서는 관심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좌담회 패널로는 김기석 목사(청파감리교회), 김기현 목사(로고스교회), 김호경 교수(서울장신대 신약학), 김근주 교수(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구약학)가 참석했다. 사회는 김민웅 교수(성공회대학교 NGO대학원)가 맡았다. 다음은 좌담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김민웅 교수(이하 김민웅) / 이 책은 미국에서 많은 논란을 낳았다. 첫 번째 질문은 왜 한국교회 안에는 아무런 동요도 없을까 하는 것이다. 목회 현장에 있는 김기석 목사가 먼저 답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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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석 목사. ⓒ뉴스앤조이 김태완 |
김기석 목사(이하 김기석) / 논란이 안 되는 것은 이 책이 안 팔려서 그렇다. (웃음) 사람들이 책을 안 보니까 논란이 안 된다. 교인들뿐만 아니라 목회자들도 책을 안 읽는다. 이것이 이 책이 논란이 되지 않는 첫 번째 이유다.
또 하나의 이유는 한국교회 안에 신학적인 것은 논의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특히 천국과 지옥에 대한 것처럼 민감한 문제들 말이다.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논의를 하면 논의의 맥락을 고려하기보다 천국이 있나 없나 식의 단답형으로만 질문한다. 이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김민웅 / <사랑이 이긴다>는 예수를 믿지 않고 죽은 영혼이 지옥에 간다고 단정하는 것을 비판한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가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김호경 교수(이하 김호경) / 예수를 안 믿으면 지옥에 가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이 질문을 변형시켜 보면 어떨까.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지옥에 안 가는가."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구호는 신약 성서의 문법과 어울리지 않는다. 예수는 '주여 주여' 한다는 이유로 천국에 들어올 수는 없다고 했다. 성서는 예수를 믿는다는 것만으로 천국이 보장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성서는 그동안 우리가 너무나 당연시해 왔던 부분에 대해서 생각할 여지를 준다. 성서가 그렇다는 것이지 내 이야기가 아니다. (웃음)
김민웅 / 지옥에 간다는 것인가, 안 간다는 것인가.
김호경 / 인간은 알 수 없다. 성경은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다. 우리는 성서가 요구하는 대로 행할 뿐이고 천국과 지옥에 가는 것은 하나님이 결정한다. 우리가 단언해서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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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근주 교수. ⓒ뉴스앤조이 김태완 |
김근주 교수(이하 김근주) / 구약에서 지옥을 의미하는 '스올'이라는 단어는 '땅 밑 세계'를 의미한다. 땅 밑 세계는 이스라엘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든 사람이 죽으면 가는 곳이다. 구약성경이 만들어지던 시기에 세계를 땅 위, 땅, 땅 아래로 구분하는 세계관이 있었다. 구약성경도 그 세계관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구약의 사상은 여호와를 섬긴다고 다른 영역으로 가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스올에 간다는 것이 아니다. 죽은 모든 사람은 스올이라는 곳에 간다는 것이 구약성경의 일관된 견해다.
김기현 / 이 책을 읽으면서 지옥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지옥에 대한 이야기의 토대는 천국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복음이 이야기하는 바는 인간의 운명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에 대한 것이고 지옥은 천국과 하나님나라라는 맥락에서 이야기되어야 한다. 맥락에서 벗어나면 오해가 생긴다.
또 하나는 종말론의 궁극적 지향점이 윤리라는 것이다. 지옥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랍 벨은 어떻게 이 땅에서 부활의 삶, 하나님나라의 삶을 살 것이냐에 관심을 갖는다. 예수가 천국, 지옥, 심판 등을 언급한 의도도 오늘 여기서 어떻게 선한 삶을 살 것인가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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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호경 교수. ⓒ뉴스앤조이 김태완 |
김호경 /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것은 하나님나라에 대한 개념을 분명하게 설명하지 않은 점이다. '나라'라는 말 때문에 천국을 공간이라는 개념으로 생각할 여지가 있다. '나라'로 번역되는 '바실레이아'라는 단어는 원래 통치, 지배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지고, 하나님이 왕이 되는 것이 천국의 개념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옥이란 선(善)이 결여된 상태, 하나님이 통치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김민웅 / 천국과 지옥을 논할 때 공간의 개념에 머물면 하나님나라와 지옥이 역사적인 실체와 연결되는 지점을 포착하기 어려워진다. 하나님의 선과 정의가 이 땅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알아차리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랍 벨은 천국과 지옥에 대해 선택받고 버림받은 사람들이 분리되어 수용되는 '분리수거'라는 관점에서 보는 것을 비판한다. 랍 벨은 공간의 개념을 넘어 어떤 질서, 역사, 사회가 이루어질 것인지, 지금 이곳에서 하나님나라를 어떻게 이루어 가야 하는지를 강조한다.
김호경 / 강조하고 싶은 것은 종말론이 등장한 시점이다. 기원전 5세기에 종말론이 나오는데 그 배경은 현실의 고통이다. 악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을 처벌할 힘이 없다는 의식이 있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새로운 세상이 오면 저들은 벌 받을 것이라는 믿음이 내세에 대한 생각을 만들어 냈다. 공의로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고통스러운 현실의 삶을 이겨 낼 수 있는 힘을 주었다. 결국 종말에 대한 이해는 윤리와 떨어질 수 없게 된다. 세상의 끝이 언제 오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깨어 있으라는 예수의 명령을 지키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종말에 대한 이야기가 현재의 삶을 변화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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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현 목사. ⓒ뉴스앤조이 김태완 | 김기현 / 복음서에는 두 종류의 구원관이 등장하는 것 같다. 마태복음 24장의 양과 염소의 비유를 살펴보자. 양과 염소를 가르는 주도권을 예수가 가지고 있다. 하나님이 능동적으로 양과 염소를 가르는 분으로 나온다. 반면 요한복음을 보면 인간이 능동적으로 주도권을 갖고 천국과 지옥을 결정한다는 관점이 등장한다. 두 관점을 논리적으로 정리한 사람이 C. S. 루이스다. <천국과 지옥의 이혼>을 보면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가 긴장 상태에 있다. 성서 안에도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가 공존하고 있다. 우리도 구원의 확실성과 천국을 이야기하면서 이런 긴장을 견지해야 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