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고맙습니다. 결국 또 하나의 게시판 번호를 따게 됐군요.
무슨 말인가 하면, 지금까지 꼬박 꼬리말을 쓰다 실패하고서 댓글 난으로 옮겨 왔거든요.
꼭 네 번 자판을 두들겼네요. 이상하네요. 로그인하고 비밀번호 치고 하라는 대로 한 다음 길게 꼬리말을 정성껏 작성하고, 그리고 "입력"을 꾸욱 누르면 몽땅 날아가버리거든요. 그것도 네 번씩이나. 힘드네요.
되도록 짧게 쓰겠습니다. 최소한 니콜라님의 성의에 답하는 뜻에서이죠.
먼저 '객관적인' 시선을 지키려 한 점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물론 공감하는 부분도 많고요. 하면서도 다소 자극적인 제목과 더불어 끝부분에 차차엉아의 역정 비슷한 게 맘에 걸리네요. 허나 맘을 편하게 먹으셔도 됩니다. 으레 그러했듯 저는 애초 윗글을 쓸 때부터 논쟁을 바라거나 기대하지도 않았으니까요. 홈피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교우님들을 알기 때문에서죠. 그건 다른 말로 존중한다는 뜻이기도 한데 그만큼 고심했던 거죠. 제 글의 행간을 읽으시면 그 점이 뜨이지 않을까 합니다. 마치 기자가 사건을 건조하게 기술하듯 노력했거든요. 그저 상황의 절박함과 평화를 위한 소망에서 나도 모르게(?) 자판을 두드렸다는 표현이 아마 맞을 겁니다. 어짜피 무거워지는 건 어쩔 수 없지 않느냐 하면서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설득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고요 엉아가 제기하신 논지에 뭔가 보태려는 뜻에서 댓글을 답니다.
이슬람은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거의 미지의 세계와 다름없다고 전 봅니다. 이건 평균적 일반인의 생각이란 문맥에서 말하는 겁니다. 한 두명의 전문가 갖고는 안 되니까요. 마침 엉아께서 아주 좋은 예를 들었습니다.
"한손엔 칼을, 한손엔 코란"이란 열쇠말에서 니콜라님은 가혹한 환경에서 자란 태생적 호전성을 암시하셨습니다. 그럴까요? 전문가에 따르면 이 말의 참뜻은 "전장(칼)에서도 믿음(꾸란)을 잃지 말라"에 있다 합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여기에 덧칠을 해댔고 그걸 고스란히 오해의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온 것이라면 어떨까요. 게다가 우리는 그것도 모자라 물질주의의 덧칠을 합니다. '싸우디'나 리비아는 한동안 건설 달러의 상징이었고 지금은 기름밭으로 조금 시야가 넓어졌는가요? 이라크에 군대를 파병하면서 불붙었던 논쟁을 기억하시겠지요. 바로 "국익"이었습니다. 거기에 이라크의 민주주의나 인간은 없었지요. 그래서입니다. 이슬람에 관한 한, 한마디로 우리는 더 배울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걸 겸손이라 이름합니다.
이슬람하면 떠오르는 혐오의 목록은 결코 짧지 않습니다. 여성에 가해지는 비인간적 처우, 호전성, 종교의 부자유, 민주적 기본권의 박탈, 머리에 쓰는 이상한 '누더기', 전근대적 신분제, 호사가적인 눈으로 본 일부다처제, 요즘은 테러리스트 이미지에다 음습한 지하드까지...분쟁의 한가운데에 분명 종교적 요소는 있을 겝니다. 해묵은 종파(수니-시아)간 대결, 종교적 근본주의 따위겠죠. 그러나 이런 것들이 있다고 해서 이슬람교를 탓할 게 아니라 다른 쪽에서 접근할 문제라고 봅니다. 이를테면 부족/소수민족, 성차, 민주정체, 부의 배분문제인 거죠. 예로 드신 살만 루시디에 떨어진 사형명령도 독재정권에 더 큰 책임이 있지 이슬람 교리가 발원지는 아닙니다. 반역사적인 아야톨라 호메이니식 신정일치를 모든 이슬람 민중이 지지하지 않는다는 점도 놓쳐선 안 됩니다. 이쯤에서 제가 지금 이슬람 쪽을 무조건 편들려는 입장이 아니란 건 니콜라님도 아실 겁니다. 앞서 말한 대로 이번에 어느 이슬람 지도자가 공개토론을 제의했다는 까닭도 그런 편견을 밝히려는 데 있지 않겠습니까. 참, 어느 분이 그러는데 꾸란(코란)을 읽으면 읽을수록 깜짝 놀란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성서와 너무도 닮아서라고 합니다.
이런 경우 일반론이랄까 상식이야말로 참 소중합니다.
사람들은 같은 것에 친숙하고 다른 것에는 당황하면서 적대감마저 품기 마련입니다. 다른 건 다름일 뿐 틀림 또는 나쁨이 아니지요. 그런데 남의 다름을 나와 같게 만들려는 충동이 이때 생길 수 있지요. 이건 즉자적 충동이자 미분화된 사유입니다. 종교적 신념이 여기에 더욱 강고하게 작용한다면 그건 슬픈 일입니다. 최근 미국 학자 샤뮤엘 헌팅톤이 "문명의 충돌"을 말했지요. 9.11에 자극 받았음인지 이 이론에 심취한 사람들을 주위에서 많이 봤습니다. 명쾌해서 그럴듯하고 자극적이죠. 저는 이 명쾌함 뒤에 숨겨진 '서양'의 정복적 이데올로기와 뿌리 깊은 백인의 우월의식을 느낍니다. 위에 적은 대로 그건 딴 각도에서 풀어야 할 과제라는 거죠. 솔직히 차차 엉아의 "역정"에서 언뜻 그런 문화적 친숙감과 거부감의 그림자를 봅니다. 그러하기에 일찍이 많은 인류의 양심들이 종교간 대화를 강조했지요. 기독교의 나라 영국만 해도 버트랜드 럿셀이 그랬고 토인비도 비슷하게 발언했습니다. 죽어도 바꿀 수 없는 교리를 포기하라는 게 아니겠지요. 다만 서로 위해를 가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을 바로 알고 인정하라는 거겠지요.
니콜라님이 머리글에서 두 문명 간의 역사적 사례를 드셨지요. 이 경우 누가 더 잘못했는가를 따지는 자리는 아닐 겁니다. 제 지식이 딸리기도 하고요.
이제 끝내겠습니다. 읽으신 걸로 압니다만 다시 한번 캔터베리 대주교님의 연설문을 보셨으면 합니다. 제가 며칠 전 "기독교-이슬람 포럼에 부쳐"란 제목으로 <문서자료실>에 올려놨지요. 좀 긴 게 흠이지만 정말 좋은 글입니다. 명연설이자 역사의 획을 긋는 내용이라고 전 감히 말하고 싶네요.
건/즐필하시고 너른 세계인식과 평화를 위해 다함께 아자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