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3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글쓴이 한상봉 기자 | isu@catholicnews.co.kr
사회적 영성, ‘타자’를 추구하는 신앙 감정과 실천
김진호 연구실장 “하느님은 자기해체에 이르기까지 타자되기를 갈망한다”
‘사회적 영성’이란 “교회를 넘어서, 그리스도교를 넘어서 ‘타자되기’의 감수성을 통한 사회적 실천”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은 우리신학연구소와 신앙인아카데미 등 천주교와 개신교 연구단체들이 공동 주최로 11일 서울 한백교회에서 열린 인문-신학 아카데미 가을 강좌 마지막 회에서 ‘격노사회와 사회적 영성’을 주제로 발표했다.
▲ 김진호 연구실장
김진호 연구실장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는 경제적 파탄을 체험하고, 국제통화기금(IMF)의 협박성 권고에 따라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질서에 과격하게 편입되면서, ‘욕망의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왔다”고 지적하면서, 우리 사회가 “생존을 위해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평가된 사회적 가치에 맞추어 내달려 왔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부자 되기’와 성공만을 선망하는 가운데, 오히려 여기서 ‘타자화’된 이들에 대한 공감과 스스로 타자되기를 추구하는 신앙적 감정이 새로운 개념의 ‘사회적 영성’이라고 김 실장은 말했다.
이 문제를 다루면서 김진호 실장은 신약성경의 코린토 시에서 벌어진 갈등 가운데 하나였던 ‘방언’ 문제를 예로 들었다. 방언은 일상의 언어와 다른 낯선 소리였다. 일상의 언어는 그 사회가 추구하는 옳음과 그름, 아름다움과 추함 등의 가치를 담고 있다. 하지만 방언은 그런 언어 체계에서 포착될 수 없는 말이다. 이를 김 실장은 “일상 언어의 관점에서 보면 소리, 아니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방언을 신령한 소리로 알아듣는 사람들이 생기는데, 이들은 “대개 지배적 언어체계에서 소외된 이들”이다. 낮은 계층의 여성이나 노예, 그밖에 비특권층 사이에서 특별히 방언 현상이 더 많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김 실장은 이를 “소리로 표현된 민중의 신비 체험 특징의 하나”라고 지적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전서 12장에서 ‘영에 속한 것들’의 목록 속에 방언을 포함시킨다. 또한 ‘영에 속한 것들’의 결론에 ‘사랑’을 놓는다. 영의 최고 덕목이 ‘사랑’이라는 것이다. 코린토 전서 13장은 사랑의 품성에 대해 길게 열거하는데, 김 실장은 이를 하나로 요약하면 ‘타자를 배려하는 품성’, ‘타자되기의 품성’이라고 말한다.
김진호 실장은 이런 의미에서 ‘신의 타자화’가 곧 그리스도라는 점, 곧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것에서 ‘타자되기의 영성’의 근거를 찾아냈다. 그리고 이 그리스도를 ‘영’과 연결하면서, 신의 타자화는 ‘신의 자기 해체’까지 뜻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곧 하느님이 ‘구원받아야 할 이의 모습’으로까지 육화한다는 것이고, 한 사회 안에서 존재감을 박탈당한 가장 말단의 대상에게까지 ‘무한한 타자화’를 감행한다는 것이다.
“아우구스투스가 ‘팍스 로마나’를 선언하면서 정복전쟁의 중지를 실행에 옮기기 시작한 지 80년 가까이 지난 1세기 중반, 주 공급원이 사라진 노예의 가격은 대단히 비싸졌다. 노예는 유지비용이 많이 드는 반면, 소작인보다 생산성이 낮았기에, 더 이상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던 많은 노예소유주들은 노예를 무차별적으로 방면했고, 그들 중 많은 이들이 대도시로 떠밀려와 마치 유기견처럼 처참한 생활을 영유하였다. 바로 그런 이들의 다수가 가장 유력한 결사체의 하나인 이스라엘 종교로 귀의한 것이다.
그림 제주도 억새밭 <연합뉴스>에서
이스라엘 교포사회에서 가장 근본주의적이고 순혈주의적 성향이 강한 엘리트들인 유대주의자들은 이런 이방인 개종자들의 순수성을 의심했고 멸시했다. 반면 바울은 이들 이방인들, 심지어 노예들이나 여자들도 그들을 차별하는 엘리트들인 유대주의자들과 아무런 차별이 없는 존재라는, 당시 이스라엘 종교 사회에서 가장 창의적이고 파격적인 주장을 폈다. 그런 맥락에서 바울이 주장하는 것이 ‘신의 은혜’다. 그리고 그 은혜의 핵심은 신의 타자화, 곧 신이 구원받아야 할 이의 모습이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바오로 사도가 생각한 ‘영성’은 “타자화된 자, ‘속하지 못한 자’에게 품는 배려의 감정이고, 그런 이들과 친밀함과 지지 감정을 나누며, 그러한 공감의 감정에 기반을 둔 모든 실천들을 함축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김 실장은 이러한 영성이 교회를 넘어선다는 점에서 ‘탈교회적’이며, 그리스도교를 넘어선다는 점에서 ‘탈신학적’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동안 영성의 의미를 독점해온 교회로부터 영성을 수거하고” “이 영성을 세상에 돌려주는 것”이라고 김 실장은 주장했다. 여기서 사회적 영성이란 종교적 개념을 넘어서 있는 “세상 속에서 타자되기를 향한 감정과 그에 기반을 둔 실천”에 붙여주어야 할 이름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