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희망을 걸었던 예수님을 잃은 제자들은 절망에 빠집니다. 더욱이 신변의 위협까지 그들을 두려움으로 몰아세웁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한 곳에 모여 문을 굳게 닫아걸고 있습니다. 모여 있는 그들의 분위기는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절망을 소리치는 듯한 무거운 침묵, 그 사이로 끝끝내 참지 못하고 세어나오는 흐느낌, 갑작스레 터져 나오는 분노의 절규, 허탈함으로 가득 찬 긴 한숨.
그때 제자들 앞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십니다. 그들은 그 놀라운 순간에 예수님의 상처(손과 옆구리)와 위안의 말씀(“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을 눈과 귀로 확인합니다. 그리고 굳게 닫아걸었던 문처럼 절망으로 닫혔던 그들의 마음은 희망으로 활짝 열립니다. 살 떨리는 두려움은 언제 그랬었냐는 듯이 가슴 떨리는 기쁨으로 변해 갑니다.
그 자리에 함께 있지 못했던 토마는 다른 제자들에게 그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결코 믿지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런 그에게도 예수님은 다시 찾아오시어 자신의 상처와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토마의 입에서 터져 나온 외침은 그의 변화를 짐작케 합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제자들은 십자가를 지고, 상처를 입고, 죽임을 당한 예수님을 통해 절망과 두려움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의 상처와 위안의 말씀에 다시 희망과 기쁨을 내뱉습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으십니다. 그분은 제자들을 통해 ‘하느님의 계획’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에게 제자들은 ‘희망’이었습니다. 언젠가 자신의 계획, 사랑을 실현할 귀한 희망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언제 어느 순간, 어떤 현실 속에서도 그들 안에 담긴 하느님의 계획과 희망을 바라보았습니다.
도망쳐 절망과 두려움으로 굳게 문을 닫아 걸은 이에게도, 자신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한 이에게도, 내 눈과 손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믿지 못하겠다고 하는 이에게도 자신의 상처와 위안의 말씀을 건네십니다. 그들 모두 하느님의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들 속의 하느님 계획을 바라보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예수님은 자신의 상처와 위안의 말씀을 건네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희망이자 계획이기에 절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예수님이 보셨던 희망과 계획의 눈으로 주위를 바라보라 말씀하십니다.
내가, 우리가 받은 희망과 신뢰를 전해 주라 하십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눈으로, 손과 발로 하는 고백입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