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성부, 성자, 성령 한 분이시며 세 분이신 삼위일체 하느님을 기념하는 삼위일체주일입니다. 삼위일체만큼 난해한 신학 주제가 있을까요. 초대 그리스도교의 경험과 신학을 갈무리하고 중세 그리스도교 신학, 나아가 현대 그리스도교 신학의 모태가 되기도 했던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삼위일체에 관해 탐구하다 유명한 문구를 하나 남깁니다. “Si comprehendis non est Deus.” 이 말은 “당신이 이해했다면, 그것은 결코 하느님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피조물에 불과한 우리의 언어와 생각으로 어떻게 창조자이신 하느님을 모두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삼위일체와 관련해 복잡다단한 논쟁이 있었고, 다른 주장을 가진 이들은 서로를 공격하고 파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본래 삼위일체 교리는 “세 위격이 어떻게 해서 한 본체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의 해답을 찾으라는 요청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교인들이 자신들이 경험한 창조자이신 성부, 구원자이신 성자, 지금도 우리 곁에서 활동하시는 성령 하느님을 표현하기 위해 준비한 깊고 융숭한 신앙고백이라 이해하면 됩니다. 이 고백은 또한 하느님 자신이 성부, 성자, 성령님의 “공동체”라는 사실도 드러냅니다. 삼위일체이신 성부, 성자, 성령 하느님이 서로에게 자신의 여백을 내어주는 친교를 이루고 있다는 뜻이지요. 교회는 하느님을 본받아서 교회로 모인 서로에게 자신의 곁을 내어주는 공동체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는 인간의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삼위일체 신비를 향합니다.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거룩한 삼위일체 하느님의 일치를 닮아 갑니다. 사랑이라는 끈으로 서로 묶여 있는 하느님의 친교를 지상에서 펼쳐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입니다. 매주 드리는 성찬례는 삼위일체 하느님이 세 분이시지만 동시에 한 분이시듯, 우리 또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세상을 살지만 깊은 차원에서, 그리고 신앙이라는 기준으로 볼 때 하나로 묶여 있음을 확인하고 힘을 얻는 순간입니다.
교우 여러분, 세상은 세상의 주된 논리가 분리와 경쟁, 승자와 패자가 분명히 나뉘는 싸움이라고 우리를 설득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는 사랑의 끈으로 서로 묶여 계신 하느님 자신이 보여주시듯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 일치를 이루려는 노력이 결국 세상을 이길 것이라 말합니다. ‘신비’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삼위일체를 우리의 관계를 통해, 삶을 통해 살아내시는 동대문교회 공동체가 되어 가시길 깊이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