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 속의 마르타는 낯선 손님을 대접하라는 이스라엘의 유구한 명령을 충실하게 이행하려는 사람입니다. 그녀는 예수님 일행이 다시 길을 떠날 힘을 얻도록 음식을 제공하는 데 힘을 썼을 것입니다. 섬기는 일에 혼신을 다하고 있는 마르타와 달리 마리아는 예수님의 곁에 앉아 그분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시중드는 일에 경황이 없던 마르타’는 이를 보고 화가 나 예수님께 “주님, 제 동생이 저에게만 일을 떠맡기는데 이것을 보시고도 가만 두십니까? 마리아더러 저를 좀 거들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하고 청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마르타, 너는 많은 일에 다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말씀하고 싶으셨던 것일까요?
루가복음의 별명은 “소외된 사람들의 복음서”입니다. 루가복음 안의 예수님은 갈릴래아의 활동에서부터 이미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을 분명히 하십니다. 어쩌면 마르타는 루가복음의 핵심적인 주제를 가장 분명하게 몸으로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당시 사회에서 소외된 방랑자들이었던 예수 일행을 위해 애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르타의 분주한 일들보다 마리아의 “참 좋은 몫”을 두둔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 그리스도인의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 보다 앞서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말입니다.
우리는 누구인가요. 간략하게 말하자면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 받은 자, 즉 구원자라는 뜻이니 이 말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자시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세상을 넘어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주신 분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가장 강력한 주장은 우리 삶이 경쟁으로 이뤄져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논리와 가치, 방식은 ‘강한 자는 살아남고, 약한 자는 죽는다’는 신화를 중심으로 꾸려져 왔지요. 예수님은 이에 맞서 하느님의 나라는 사랑과 자비로 일하며,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라고 말씀하십니다. 일상에서 경쟁과 질시로 질서 지워진 세상으로부터, 사랑과 자비로 묶인 하느님 나라를 사는 일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바로 이 땅에서 하느님 나라를 사는 사람들, 우리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누구인지에 귀 기울였던 마리아,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세상을 어루만졌던 마르타, 이 자매의 깨달음과 실천이 그리스도의 교회를 굳게 세웠습니다. 우리는 어떤 몫을 택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수고가 교회의 삶을 일구고 세상에 진정한 평화를 일깨우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