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天國)과 천국(擅國)
그리스도교는 하느님이 다스리는 나라, 하느님이 함께 하시는 곳을 천국(天國)이라고 부릅니다. 이전 시대의 세계관에서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며 다스리시는 분이라는 믿음 때문에 생겨난 단어입니다. 핵심은 하늘이라는 장소가 아니라 하느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부자와 거지 라자로의 비유를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부자는 비싼 옷과 귀한 음식으로 날마다 잔치를 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즐겁고 흥겨운 삶인지 부럽기도 합니다. 우리가 항상 꿈꾸는, 근심과 걱정없는 평화로운 삶이라 느껴집니다. 친구들을 초대해 음식을 나누고, 동네의 어려운 이웃이 왔을 때 쫓아내지 않고 음식 부스러기를 내어주는 인덕까지도 보이는, 여유롭고 안정된 삶입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모습, ‘지상낙원, 천국’입니다.
비유는 사후세계로 넘어갑니다. 그곳에서 부자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받는 곳에 위치합니다. 소위 ‘지옥’이라 부를만 합니다. 앞을 쳐다보니 편안하고 풍요로워 보이는 곳에서 일상을 누리고 있는 거지 라자로를 발견합니다. 그가 살아생전 누렸던 천국의 모습입니다.
여전히 부자의 관심은 그가 평생 바랐던 근심과 걱정 없는 안정되고 평안한 상황입니다. 그 상황이 그에게 천국이고 또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지옥에 위치한 그의 관심은 ‘라자로’도 아니고, 그와 함께 있는 ‘아브라함’도 아니었습니다. 라자로가 위치한 안락해 보이는 장소, 그가 누리고 있다고 여겨지는 풍요로운 상황이었습니다. 부자의 천국에 하느님은 계시지 않습니다.
한자로 擅(멋대로 할, 천)자가 있습니다. 부자 생전에 누렸던 것은 천국(天國)이 아니라 천국(擅國)이었습니다. 그리고 죽음 이후 그가 있는 곳 역시 천국(擅國)입니다. 그는 항상 자신과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거지 라자로를 제대로 쳐다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동정을 가장한 무관심으로 대했을 따름입니다. 당연히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느님 역시 볼 수 없었습니다. 부자는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곳,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멋대로 선택한 천국에 위치해 있는 것입니다.
천국은 내 멋대로 상상하는 멋진 곳이 아닙니다. 천국은 죽음 이후에나 가게 되는 곳도 아닙니다. 지금도 사후에도 하느님이 함께 계시는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