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근본을 기억하는 일
매 주일, 세계의 여러 교회에서는 성찬례를 봉헌합니다. 말 그대로 감사제, 하느님께서 자신의 외아들을 통해 온 세상을 구원하신 것에 기뻐하며 이를 마음 깊이 새기는 일, 세상에 이 기쁜 소식을 전하려 다시 한번 제자들을 파송하는 일이 바로 우리가 드리는 성찬례의 본뜻입니다. 초대 교회 때부터 그리스도인들은 감사드리기 위해 교회로 모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찬례가 감사의 잔치, 하느님께서 베푸신 선의와 축복에 대한 감사로 시작해 기쁨으로 마치는 감사의 잔치임을 잊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복음서 이야기는 ‘감사’에 대한 주제를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을 때 나병 환자 열 사람이 멀찍이서 주님을 부릅니다. 당시 나병 환자들은 부정한 사람들로 여겨져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 들어갈 수도 없었습니다. 지독하게 외롭고 괴로웠던 그들이 이제 예수님께 희망을 거는 것입니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예수님께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의 몸을 보여라”라고 짤막하게 답하십니다. 그 자리에 모였던 환자들은 예수님의 짤막한 말, 어쩌면 성의 없어 보이는 그 말에 실망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신비하게도, 그들이 사제에게 도착하기 전에 나병은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이제 나병을 앓았던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했을까요? 그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사제에게 완치된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 지금껏 어울리지 못했던 사람들, 마을 공동체로 돌아가 기쁨에 겨워 사는 선택지가 있습니다. 잔치를 열지도 모르지요. 두 번째는 오늘 복음서 속 사마리아 사람과 같이 자신이 받은 선물에 감사드리기 위해, 그 선물을 잊지 않기 위해 선물을 주신 그분을 다시 찾아가는 선택지입니다. 열 중 아홉은 첫 번째 선택을 했고, 단 한 명만이, 그것도 유대인에게서 이방인 취급받던 사마리아 사람 한 명만이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는 단순히 기쁘고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 일이 아닙니다. 감사는 자신에게 전해진 이 선물의 원래 주인을 내가 기억하고 있으며, 그분의 뜻에 헌신하겠다는 다짐입니다. 예수님께서 아홉 환자에게 실망하신 이유는, 그들이 곧 자신들이 받은 선물을 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을에 정착하고 일거리를 찾고 가족을 꾸리고 먹고 살면서, 그들은 곧 자신들이 어떻게 새 삶을 살게 되었는지, 옛 삶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사람이란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게 아니라, 사는대로 생각하기 마련이니까요.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하느님의 구원의 선물, 은총을 받은 분들일 텐데, 하느님께 대한 감사를 잊고 살지는 않냐고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