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이웃을 억눌러 빼앗아 먹지 마라.
품값을 다음날 아침까지 미루지 마라.” (레위 19:3)
레위기 19장의 말씀은 자신의 힘과 권력을 이용해서 약자들의 몫을 수탈하지 말고 각자의 몫을 정당하게 주어야 한다는 분배의 정의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특히 품값을 다음날까지 미루지 말라는 것은 고용주가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며 노동자의 생계를 위협해서는 안된다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하루의 품값은 그 노동자와 그의 가족이 끼니를 이어갈 수 있는 소중한 돈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현실과도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노동문제, 특히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합니다. 하느님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노동의 중요성과 노동자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한국사회에서 노동의 조건은 별로 좋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어쩌면,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나빠지게 될지도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비정규직이라는 명목으로 필요한 경우에만 고용이 이뤄지고 그렇지 않은 시간에는 외면당하는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으며, 또한 가족의 생계가 달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리해고와 명예퇴직으로 정들었던 일자리는 떠나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고용주는 약자에게 불리한 노동조건으로 자신들의 이익만을 극대화하고 있으며, 정부도 분배보다는 성장에 더 치중하며, 친재벌 정책을 펼침으로 많은 노동자들이 고통과 시름에 빠져있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선 영세하고 부당한 조건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실업난과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일할 권리와 차별에서 자유롭지 못한 여성노동자,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살아가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생활에 기반이 되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외면할 때 사회는 불안해지고 사회의 악한 고리는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지금도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계시고, 그들을 보호하시기를 원합니다.
이 세상을 하느님의 나라로 만들어 가는 것을 사명으로 받은 이 땅의 모든 교회들은 이것을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교회가 돈이 있고 힘이 있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그들이 주는 달콤한 열매를 따먹으려 할뿐, 하느님의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서 불의한 세력에 맞서 싸우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느님의 정의에 무관심 하더라도, 적어도 우리 성공회만큼은 달라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정의는 곧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와 배려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서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