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천, 남겨진 이들에게
대다수 사람은 생을 마감하기 전 사랑하는 사람을 찾습니다. 그리고 한 번이라도 더 사랑을 전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남겨진 이들을 걱정하지요. 홀로 될 남편이나 아내, 자녀를 위한 당부의 말을 아끼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셨습니다. 하늘로 오르시기 전, 자신이 사라진 세상에 남겨질 제자들을 향해 사랑을 가득 담아 당부의 말씀을 전하십니다. “서로를 사랑하라”고 말입니다.
교회력에서 예수님이 우리 곁에 계시지 않다고 표현하는 시기는 두 번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시기 전 3일, 그리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성령’을 보내주시기 전까지의 기간, 10일.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부재를 경험하는 승천축일에 서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 전 3일간의 날들에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면, 승천하신 후 성령이 오시기까지의 날들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했고, 그분께서 다시 오시리라는 것을 굳게 믿었으며, 하느님을 찬미했습니다. 그들의 삶은 뿌리부터 뒤바뀌었습니다. 두려움과 공포에 떨던 무리들이 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유대와 사마리아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띤 제자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새롭게 태어난 그들이 다시 직면하게 된 예수님의 부재, 예수님의 사라지심은 분명 이전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오르신 하늘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삶을 뒤바꾼 구세주께서 우리 곁을 떠나셨으니 헛헛함도 남았겠지요. 그런 그들에게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나타나서 “왜 하늘만 쳐다보며 서 있느냐?”고 묻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사명을 가진 너희들이 이곳에서 멍하니 서 있으면 안 되지 않겠느냐?”라는 말로 읽힙니다.
예수님은 본인의 사명을 온전히 성취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하실 수고도 끝난 셈이지요. 남은 건 그분이 우리에게 전하신 ‘당부’,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사랑으로 제자 삼으라는 새로운 명령입니다. 방황하며 하늘만 쳐다보지 말고, 하늘에서 떨어질 무언가를 기대하지 말고, 이 세상에서 또 한 명의 예수로, 사람들을 구원하고 사랑하는 작은 예수로 살아가야 한다는 명령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늘로 오르신 우리는 어디를 바라봅니까? 멀어져 간 주님의 흔적들입니까? 아니면 내 곁에, 주변에, 내 마음속에서 맴도는 우리의 사명입니까? “서로 사랑하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사명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날까지 우리 삶을 근본부터 이끌어 갑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별은 이별이 아니라, 희망을 잃어버린 공허의 시간이 아니라, 새로운 만남의 시작이며 하느님께서 완성하실 거룩한 나라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