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를 찬미하시고, 아버지와 당신의 관계를 계시하시며, 사람들을 당신께 초대하십니다. 찬미, 계시, 초대의 차원을 보여 주는 세 부분의 짧은 말씀은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감지하고 그 안에 머무르는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첫 번째 대목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모든 신비가 ‘현자들(안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이라 불리는 이들에게는 감추어져 있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났다고 기뻐하시며, 이야말로 아버지의 선한 뜻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현자들은 율법 학자나 바리사이처럼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하느님에 대해서 연구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철부지들은 주님에 대한 지식을 얻으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신뢰하며 자신에게 다가오시기를 어린아이 같은 단순한 마음으로 갈망하는 이들을 말합니다.
지식의 대상으로 주님의 신비를 대하거나 천상과 지상,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이 모두에 대한 대답을 가진 듯한 ‘강단 신학’에 자족하는 신학자는 정작 가장 중요한 신비는 깨닫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번째 대목에서 그 모든 것을 담은 신비는 성부와 성자께서 서로 깊이 알고 계시며 성자를 통하여 사람들이 아버지를 알게 되는 것이라고 ‘계시’해 주십니다. 이 앎은 얻어 내는 것이 아니라 선사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고 주님께서 몸소 알려 주시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이들에게 드러납니다.
세 번째 대목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선사하시는 앎이 우리의 삶과 어떻게 대응되는지를 보여 주십니다. 계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란 고단함에 치이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이들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당신의 사랑 안으로 초대하시고, 그들은 어떤 계산도 조건도 없이 감사하며 응합니다. 주님의 멍에를 주저 없이 메고 주님께 배우려 합니다. 온유하시고 겸손하신 주님께서 그 멍에로 오히려 안식을 주시리라는 것을 알고 믿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안식은 참된 행복입니다. 주님께서는 단순한 마음, 가난한 마음, 간절한 마음으로 당신을 찾는 이들에게 이 참행복의 길은 쉽고 편하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약속이 ‘참’임을 알기에 우리는 오늘도 이 길을 걷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