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10여년전에 일어난 9.11 테러가 생각났습니다. 그 테러를 보복하겠다고 전쟁을 일으킨 것이 십 년 전입니다. 지난 십 년 동안 세계가 더 평화스러워졌습니까? 그 전쟁터에 군대를 보낸 나라들이 더 안전해졌습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곳에서 납치당하고 살해당했던 일들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9.11 테러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그것을 보복하겠다고 일으킨 전쟁 때문에 또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증오심과 복수심은 평화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진리를 다시 확인하게 된 전쟁입니다.
사실 어떤 전쟁이든지 전쟁을 일으켜서 평화를 얻지는 못합니다. 일부 과격한 사람들은, ‘그러면 그런 테러를 당했는데도 참기만 하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말이냐?’ 라고 물을 것입니다. 참기만 하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질문에, ‘전쟁이 아닌 다른 방식은 없는 것인가?’ 라고 되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테러를 일으킨 자들의 편을 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테러도 그 테러에 대한 보복 전쟁도 모두 반대해야 합니다. 북한이 이런 저런 도발을 할 때마다 일부 정치인들은 전쟁을 하자고 주장했지만 대다수 국민은 단호하게 대응을 하되 전쟁은 하면 안 된다고 반대했습니다. 우리에게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전쟁으로 평화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만일에 북한이 도발할 때마다 똑같은 방식으로 보복을 하거나 전쟁을 했다면 우리에게는 평화란 아예 없었을 것이고, 이 땅은 사람이 살지 못할 나라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메시아 나라의 평화에 대해서 이사야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늑대가 새끼 양과 어울리고 표범이 숫염소와 함께 뒹굴며 새끼 사자와 송아지가 함께 풀을 뜯으리니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암소와 곰이 친구가 되어 그 새끼들이 함께 뒹굴고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리라. 젖먹이가 살무사의 굴에서 장난하고 젖뗀 어린아기가 독사의 굴에 겁 없이 손을 넣으리라.(이사 11:6-8)."
그런데 그런 평화가 오려면 늑대, 표범, 사자, 곰, 살무사가 회개를 하고 자기들의 힘을 포기해야만 합니다. 양과 송아지와 어린 아이의 힘만으로는 어려운 일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힘 있는 나라와 힘 있는 자들이 그 힘을 사용하고 싶은 욕망을 포기해야만 합니다. 힘없는 사람이 힘이 없어서 참아야 하는 것과 힘 있는 사람이 그 힘을 사용하고 싶은 욕망을 참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복음 말씀의 '매정한 종의 비유'는 바로 그 힘이 있는 사람에게 주시는 가르침입니다. 만일에 힘 있는 자들이 그 힘을 사용하면서 횡포를 부린다면 하느님께서는 힘없는 사람들 편을 들어주실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