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6:1-5,12-19)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은 후 하느님 임재의 상징인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고자 하였다. 그러나 다윗이 법궤를 수레에 싣고 옮기려다 우짜가 죽는 사고를 당한다. 수레는 편리하다. 법궤는 편리하게 수레로 운반하는 것이 아니라 사제들이 어깨에 메고 온 몸과 마음을 다하여 운반해야 하는 것이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함으로 해야 한다. 법궤가 있던 오베데돔의 집이 축복을 받았다. 법궤를 안치한 예루살렘에 성전이 세워지고 하느님의 거룩한 도성이 되었다. 참 법궤는 예수님이다. 편리성을 추구하기보다 진실함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에게 주님이 주시는 놀라운 축복이 있다.
(에페1:3-14)
바우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 자녀로 삼으신 하느님을 찬미한다. 세상 창조 이전부터 마련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고, 우리는 그 말씀을 믿을 때에 약속의 보증인 성령을 받는다.(설명:바우로 표기~공동번역에서는 바울로라고 하지만 성공회에서는 전통적으로 바우로라고 한다.)
(마르6:14-29)
헤로데가 세례 요한을 죽이는 과정은 불명예와 불행으로 점철된 인생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첫째, 헤로데는 하느님의 법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율법을 어겼을 뿐 아니라 어긴 사실을 비판하는 예언자 세례 요한을 오히려 잡아 가두는 잘못을 범했다. 즉 회개의 기회를 가졌으되 그 기회를 발로 차버린 것이다. 둘째로 헤로데는 하느님보다 자신의 맹세나 사람들의 눈치를 두려워하였기에 역사에 오명을 남기는 삶을 살았다. 권력에 취해 허튼 맹세를 하거나 사람들의 칭찬에 목을 매면 결국 하느님을 배신하는 길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인생길이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일 수 없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몸과 영혼을 능히 죽일 수 있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행복한 인생을 위한 비결이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며, 주님의 말씀을 즐거이 여겨 주야로 묵상하는 삶이 복 있는 사람이 되는 비결임을 기억하자.
<묵 상>
우리를 선택하시고 축복하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는 하느님의 계획이 우리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그 말씀에 따라 살아갑시다. 우리가 마음을 열어 놓는다면 살아 있는 그 말씀은 우리 안에서 분명 싹트고 자라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