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리, 너의 자리
공지영 작가의 ‘의자 놀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노래를 부르며 한정된 수의 의자 주위를 빙글뱅글 돌다가 신호에 맞춰 먼저 앉은 사람이 살아남고, 앉지 못한 사람이 탈락하는 의자놀이가 마치 지금 우리의 삶과 같다는 요지의 책입니다. 작가는 많은 현대인들이 상시 느끼는 불안감의 근원을 조명합니다. 내가 앉아 있는 이 자리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두려움입니다.
오늘 복음성경에서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을 비판하며 못마땅해합니다. 그분이 죄인과 어울렸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하는 그들을 환영하고, 그들과 함께 식사까지 나누는 예수님을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그들은 못마땅한 마음속에 죄인들과 예수님이 머물 자리는 없습니다. 배척하고 밀어내야 할 대상일 뿐입니다.
이 생각을 끝까지 따라가면 ‘죄인’은 결국 자신이 도착해서 머물 자리가 없습니다. 내 죄에 대한 댓가를 끝까지 치러야합니다. 가족에게 배척당하고, 일자리에서 밀려나고, 가까운 인간관계에서 쫓겨납니다. 그들이 있어야 할 마땅한 자리를 굳이 표현하자면 ‘지옥’뿐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지옥같은 생각에 ‘잃었던 양 한 마리’의 비유를 통해 답하십니다. 한 마리의 양을 잃어버린 목자가 남겨진 99마리를 들판에 내려 둔 채 끝끝내 한 마리를 찾아 헤맨 끝에 결국 찾아와 큰 기쁨을 맞이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죄인 한 명의 회개에 큰 기쁨을 맞이한다는 말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한 마리를 찾으려다 99마리를 잃어버리는 어리석음을 저지르면 어떻하냐?”와 같은 효율성과 확률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나라에는 한 명도 빠짐없이 누구나 ‘나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실을 내가 믿든 믿지 못하든, 타인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못하든 말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사람들이 먼저 바라보아야 할 것은 하느님이 마련하신 자리입니다. 내 자리뿐만이 아니라 우리 이웃의 자리 말입니다. 정의를 세워야 할 자리에도, 아픔을 함께 나누어야 할 때에도, 비판과 질책, 혹은 훈육이 필요하다 믿는 상황에서도 먼저 바라보고 확보해야 할 것은 그들과 내가 머물 자리, 주님이 마련한 변치 않는 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