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이 넉넉한 우리의 기도>
성서에는 기도에 관한 다양한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들으신 복음서에도 기도에 관한 가르침이 담겨 있는데 이 가르침은 기도하는 사람의 내적 태도에 관련된 것입니다. 이야기에는 두 명의 기도하는 사람, 바리사이파 사람과 세리가 등장합니다. 둘의 태도가 완전히 대조적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은 꼿꼿이 서서 당당한 반면,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해 눈을 들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은 “제가 다른 사람들, 죄인과 같지 않으니 당신께 감사드린다”고 말합니다. 그는 자신을 다른 이들과 분리시켜야 하느님께 받아들여질 것으로 믿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세리는 장황하지 않고, 겸손하게 기도합니다. 그는 가슴을 치며 자신을 죄인, 불쌍한 죄인으로 여겨 달라며 애통해합니다. 예수님은 결국 하느님께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세리였다고 말씀하시며 이야기를 맺으십니다.
오늘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항상 강조하셨던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 즉 성화聖化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들 다른 사람과 자기 자신을 갈라놓음으로써, 자기 자신의 뛰어난 모습을 더 부각함으로써 남들보다 더 거룩해지는 길을 택합니다. 불의를 저지르거나 강도짓 하는 자들, 즉 하느님의 마음에 들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는 사람들에게서 갈라져 따로 하느님께 나아가면 더 기뻐하실 것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성화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시며 당신의 자녀로 받아들이는 자비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결함과 잘못, 죄가 있다 하더라도 그들을 갈라놓지 말고, 오히려 그들과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세상과 다른 고결하고 우아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세상의 죄를 짊어지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의 제자인 우리도 기도할 때 기꺼이 세상의 죄를 짊어져야 합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기도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혹시 그 기도가 바리사이파 사람의 기도를 닮아서, 부족하고 못난 사람을 밀쳐내고 하느님께 더 사랑받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런 방식으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거룩함에 다가갈 수 없습니다. 세리가 자신의 가슴을 치며 겸손하게,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용서하소서”라고 말했듯 자기 자신의 죄를, 부족함을, 나약함을 직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연약함을 잘 아는 만큼 다른 이의 연약함도 누구보다도 더 분명하게 알고, 용서하고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그렇게 품이 넉넉한 행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