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의 믿음과 자녀의 믿음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기적은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표징을 보이라는 바리사이들의 요구에 응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 일은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는'(마태 7:6)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가나안 여자의 간청은 바리사이들과는 다릅니다. 당장 딸이 아파서 누워 있기 때문입니다. 강아지 수준의 믿음이긴 하지만 그래도 딸을 위해서 자비를 간청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그 여자가 말하는 자비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하느님의 자비는 아닙니다.
지금 그 여자의 태도는 아픈 사람이 약국에서 약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약사가 누구인지, 어떤 마음으로 약을 지어주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병만 나으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약만 찾지 말고, 예수님 당신을 주목하라고 요구하십니다. 딸의 병이 낫는 것보다 더 중요한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미신을 믿는 사람들이 큰 바위나 큰 나무 앞에 음식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내면서 자기들이 하는 일도 믿음이라고 우길 때가 있습니다. 그건 강아지 수준의 믿음입니다. 큰 바위나 나무가 인간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풀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들 속에 무슨 혼령이 있다고 생각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신이란 신의 자비와 사랑을 간청하지 않고, 그저 눈앞의 어떤 아쉬운 상황만 해결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이란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믿고 하느님께 똑같은 사랑을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가나안 여자는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여자의 말은, 하느님은 자녀들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강아지들도 사랑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자기의 믿음이 강아지 수준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말이기도 하고, 동시에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믿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없었던 믿음이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믿으려고 노력하기 시작한 것은 곧 믿음이 시작된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를 칭찬하십니다.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라는 말씀은 갑자기 자녀 수준의 믿음이 생겼다는 뜻의 칭찬이 아니라 지금의 상황에서 그 여자가 최선을 다해서 믿으려고 노력하는 태도를 칭찬하신 것입니다. 이야기는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는 말로 끝나지만, 그 여자는 분명히 우상숭배를 버리고 하느님과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믿음은 강아지 수준입니까? 자녀 수준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