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예수님은 게르게사 지방에서 마귀 들린 사람을 만나 그를 사로잡고 있는 악령을 몰아내십니다. 마귀들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갑니다. 사실 마귀들이 들어간 돼지는 유대인들이 부정하다 여기며 먹지 않던 짐승입니다. 이 돼지들은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로마의 사람들을 위해 사육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자신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이들을 위한 동물인 돼지를 바라볼 때마다 유대인들이 느꼈을 감정은 ‘분노’와‘두려움’이었을 것입니다. 이 분노와 두려움은 돼지를 기르고 있는 같은 유대인들에게도 이어졌을 것입니다. 분노와 두려움으로 인해 같은 유대인들 사이에도 ‘분열’이 생겼습니다.
한편 그리 부유하지 않은 게르게사 지방에서 돼지는 ‘부’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부유한 로마인에게 돼지를 공급하는 사람들 역시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했습니다. 이런 이들에게 게르게사 지방의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느꼈을 ‘부러움’과 ‘시기’역시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부러움과 시기 역시 같은 마을 사람들 사이에‘분열’을 낳았습니다.
분노와 두려움 그리고 부러움과 시기, 즉 미워해서 멀리하고 싶은 마음과 사실은 나도 그렇게 되고 싶은 마음이 부딪치며 개인의 마음 역시 ‘분열’이 생깁니다.
오늘 복음서에 나타난 마귀 들린 사람 역시 마을과 떨어져서 죽음만이 가득한 무덤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마을이 겪고 있던 여러 분열, 두려움과 분노, 부러움과 시기가 뒤엉킨 사람들의 분열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으로 상징되는 분열은 예수님을 마을에서 쫓아내는 모습까지 이어져, 결국 하느님과의 분열에까지 이릅니다.
이런 분열의 사이에서 예수님은 회복을 실천하십니다. 마귀 들렸던 사람 속에서 마귀를 돼지 속으로 쫓아내십니다. 분열의 상징인 돼지는 물속에 빠져 죽습니다. 회복된 남자에게 주님은 다시 마을로 들어가 함께 살아가라고 명하십니다. ‘화해’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도 끊임없는 분열 속에서 살아갑니다. 게르게사 마을의 모습은 지금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분열을 부추기는 마귀의 유혹인 분노와 두려움, 부러움과 시기가 우리를 뒤흔듭니다. 그리스도의 자녀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분열을 멈추고, 분열의 사이에서 회복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화해가 일어나는 그곳에 하느님이 함께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