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서 예수님의 비유에서는 강도를 만나 위험에 처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사제였습니다. 가진 것도 빼앗기고, 큰 상처로 쓰러져 있는 이를 앞에 둔 사제의 선택은 피하고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지금 예배를 드리러 가는 길이거나 사제로서 해야 할 급한 일을 처리하러 가는 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본업에 충실함을 선택했습니다. 그것이 하느님을 더욱 사랑하는 것이라 믿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 비유에 등장하는 사제의 이웃사랑은 내가 하는 본업, 중요하고 시급하게 해야 하는 일을 해결 후에나 가능한 것이라 보입니다.
두 번째로 등장한 사람은 레위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제사를 담당했던 지파의 후예이며, 당시에는 사제를 도와 예배에 봉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누구보다 거룩한 가계의 일원이라 믿는 그들의 선택 역시 강도 만난 사람을 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충실히 믿던 율법에 따라 부정한 피, 그것도 죽은 사람의 피를 만지는 것을 피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지금 예배를 준비하러 가는 길이었다면 더욱 그러했을 겁니다. 레위인의 이웃 사랑은 자신의 신념, 신앙, 상식이나 관습에 어긋나지 않아야만 실천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웃으로 만나기 위해 우리는 너무 많은 조건이 필요합니다. 내가 위험하거나 손해 보지 않아야 하고, 내가 불편하거나 싫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니어야 합니다.
예리고로 가는 위험천만한 길은 우리 인생길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자주 다니는 길, 언제 어떻게 위험과 어려움, 그리고 도움이 나타날지 확신할 수 없는 길입니다. 그러기에 이 길에서 만난 주님의 모습을 닮은 착한 사마리아인은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줍니다. 조건을 따지지 않는 이웃, 상황에 구애받지 않는 사랑. 예수님은 우리는 누구 하나 빠짐없이 서로 도움을 주고 받아야하는 ‘이웃’이라 말씀하십니다. 언제나 ‘이웃’으로 만나고 ‘이웃’으로 살아가는 존재라 말씀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