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성서(마태,마르코,루가,요한)에서 여자들은 죄에서 용서 받는 자로, 예수님을 사랑한자로, 예수님을 도운자로, 예수님을 증거한 자로 언급됩니다. 오늘 성서에서는 예수님을 도와드린 자로 여자들이 나옵니다. 마리아, 요안나, 수산나를 포함한 여자들이 자기네 재산을 바쳐 예수의 일행을 도왔다고 나옵니다.
당시 유대사회에서 여자는 순종과 속박과 억압이 강요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율법으로 여기고 믿었던 구약 내용 속에서도 여자들의 속박과 억압이 존재합니다. 의심당한여자(민수기 5:11-31), 유린당한 처녀들(창세기34), 레위인의 첩(사사기 19), 삼손의 딤나의 처(사사기14:1-15:6), 다윗의 아내 미갈(삼하 2:12-16)등의 내용이 있고, 이들은 남자들의 문화 속에서 이해되는 하나의 방편으로서만 이용되고 억압됩니다.
반면 복음성서에 나타난 예수님이 이해한 여자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선포한 향유 부은(마태26:6-13)마리아, 유대문화의 폭력성을 드러내고 더불어 예수님이 정죄하지 않은 간음한 여자(요한 8:1-11), 메시아를 기다리는 사마리아 여자(요한 4:1-42), 부활한 예수님을 처음으로 증인한 막달라 마리아가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 성서는 예수님을 재산을 바쳐 도운 여자들이 나옵니다.
구약에서 여자는 내용의 중심이 되지 못하고 유대교의 남성 중심문화의 하나의 방편으로서만 이해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바라본 여자는 복음서에서 나오는 것처럼 남성과 유대문화를 깨우치는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복음서 저자들이 유대문화 속에서 자란 남자들이어서 여자의 능력과 역할을 다소 줄여서 적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만약 예수님의 관점으로 여자들을 바라본다면 복음서에 더욱 풍성하게 여자들이 주체적으로 언급되어 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하느님 나라를 이해하고 여기에 속한 본성이 여자들 본성에 더 가깝다는 말이 아닐까요?
참을 줄 알고, 인내할 줄 알고, 희생할 줄 알고 그래서 때로는 억압당하는 여성을 예수님은 자신이 말한 하느님의 나라의 주된 역할로서 그들을 이해했던 것입니다.
오늘 성서에서 마리아, 요안나, 수산나와 여자들은 예수님을 위해 재산을 팔고 그를 따랐습니다. 여자들이 가지는 순수한 희생을 보여준 것이지요. 그리고 순수한 희생을 보여준 또 다른 분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 역시 인간을 위해 순수하게 희생하였고, 그런 모습은 십자가고난이라는 억압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보여주신 그 희생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남자가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속성을 가진 여자가 아닐까요?
예수님을 도와드린 여자들의 마음은 예수님의 그 마음과 닮았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