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함께 하시는 분>
한 젊은 청년이 버스를 탑니다. 누가 봐도 건장한 신체조건을 가진 청년은 아주 느릿느릿 버스에 오릅니다. 그리고는 딱 하나 남아있는 자리에 주저없이 앉습니다. 청년의 뒤를 따라 어린아이의 손을 잡은 어머니가 버스를 탑니다. 그 뒤에 구부정한 허리를 두드리는 어르신도 버스에 탑니다. 이 광경을 본 다른 사람들은 각자 속으로 생각합니다. 한 노인은 요즘 젊은이가 예의가 없다고 욕을 합니다. 갓난아기를 껴안고 있는 엄마는 청년이 배려가 없다고 혀를 찹니다. 한쪽 구석에 배를 움켜쥐고 앉아있는 또 다른 청년은 “저 친구도 나처럼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가는 길인가?”라고 걱정합니다. 마침 청년을 잘 알던 친구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청년을 향해 걸어갑니다. 오랜 지병을 앓던 친구가 생활이 넉넉지 않아 또 버스를 타고 가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번에도 무리해서 서서 가다가 넘어져서 가족은 물론 같이 버스를 타고 가던 모든 사람에게 폐를 끼쳤기 때문에 오해를 받더라도 되도록 자리에 앉으려는 그 행동이 청년의 배려임을 누구보다 잘 알았습니다.
같은 상황에서 그 모습을 본 사람 수만큼의 이해가 있습니다. 내가 아는 만큼, 내가 보려고 하는 범위 안에서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성경에 등장하는 요셉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결혼을 약속했지만 아직 신혼집에 들어가지 않은 상태에서 예비신부의 임신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자세한 상황을 알 수 없지만 자신의 상식선에서 이 일을 바라보고, 해결하려 합니다. 다행히 그는 선하고 자비가 있는 사람이었기에 자신과 예비신부의 피해가 가장 적은 방법을 생각해 냅니다. 소문을 내지 않고 조용히 파혼하는 겁니다.
그러던 차에 요셉에게 천사가 찾아옵니다. 예비신부인 마리아가 임신한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라 전합니다. 그러니 그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이라 권합니다. 요셉은 천사의 입을 통해 전해진 하느님을 믿고 그대로 따릅니다. 이 선택이 요셉을 ‘자비로운 사람’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 만듭니다. 그 믿음과 순종이 항상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드러냈습니다.
천사는 예수의 또 다른 이름을 전합니다. ‘임마누엘’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이렇듯 하느님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천사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입과 수만 가지의 상황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알고 있는 생각으로만 보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 눈에 보이는 상황으로만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셉과 같이 언제 어디서든 항상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보려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그 노력과 믿음이 나를 ‘괜찮은 사람’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의 자녀’로 만들고, 나와 세상에 하느님을 분명히 드러낼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