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에서 벗어나는 법
예수님은 탐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시기 위해 비유 하나를 말씀하십니다. 부자 한 명이 등장합니다. 그는 많은 땅을 가진 지주였던 것 같습니다. 소작인들이 공들여 일군 농지를 바라보며 ‘이 곡식을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할까?’ 하며 혼자 궁리하다가 ‘옳지! 좋은 수가 있다. 내 창고를 헐고 더 큰 것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산을 넣어두어야지’라고 생각합니다.
이 어리석은 자가 자기 영혼을 향해 말합니다. “영혼아, 많은 재산을 쌓아두었으니 너는 이제 몇 년 동안 걱정할 것 없다. 그러니 실컷 쉬고 먹고 마시며 즐겨라.” 그런데 이 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너는 이제 몇 년 동안 걱정할 것 없다.” 돌려 말하자면 이 부자는 이제까지 “걱정”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값진 물건과 곡식으로 창고를 그득하게 채워놓았음에도 부자의 마음을 지배하는 생각은 걱정, 불안이었습니다.
탐욕을 부추기는 불안, 걱정하는 마음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있을까요? 자기 자신의 삶에 온통 집중하며 끝끝내 불안함에 어쩔 줄 모르다가 생을 마감하는 삶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평화를 마음에 담고 담대하게 세상을 사는 법은 없을까요?
초대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중요한 별명 한 가지를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염려하지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을 따라 염려와 불안을 떨친 사람들로 여겨졌습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나듯 신자들은 재물, 먹을거리가 떨어지면 서로에게 부족한 것을 채워주었습니다. 굶주림에 대한 불안이 사라지자 신자들은 서로를 위해 자신들이 갖고 있던 재물을 나누어주는 데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서로를 지탱하는 공동체에 감사하며, 이 공동체의 진정한 주인이신 하느님을 찬양했습니다.
불안을 이기는 법은 단순합니다. 더 많이 움켜쥐면서도 불안해하기를 멈추고 자기 자신에게서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하는 것, 주님께 받은 선물들에 감사하며 그것들을 이웃과 나누는 것, 하느님께 받은 선물을 이웃에게 돌려주고 나 자신도 하느님과 이웃들이 준 선물로 삶을 지탱해간다는 것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불안을 이겨내는 방법인 셈입니다.
예수님은 이야기를 마치시면서 부자가 어리석은 이유는 “자기를 위해서는 재산을 모으면서도 하느님께 인색”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이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자기 자신만을 위해 쌓아 둔 재물이 얼마나 위험한지 배웁니다. 재물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방법은 그 재물을 통해 하느님을, 그리고 내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재물이 하느님을 경외하는 수단, 이웃을 사랑하는 수단이 될 때 우리는 재물이 부리는 끝없는 몽니에서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