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는 자, 푸는 자
오늘 복음성경에는 18년 동안이나 허리가 굽어져서 제대로 서지 못하는 여인이 등장합니다. 공동번역에는 병마라고 표현되어 있지만, 다른 번역본에는 이 여인을 “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라 밝히고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병자들에 대한 시선입니다. 자신의 죄로 인해 병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녀는 병자이기 이전에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자리에서 그녀가 18년 동안 병을 고치지 못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만큼 큰 죄를 지은 사람인 것이죠. 하느님의 벌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병으로 고통받는 한 가엾은 여인을 18년 동안이나 ‘죄인’으로 묶어 놓았습니다. 그녀 역시 그 묶임에 몸도 마음도, 그리고 인간관계도 옴짝달싹 못하고 살아갔습니다.
이런 여인에게 다가간 예수님은 그녀의 굳은 허리를 곧게 펴십니다. 예수님이 한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여인아, 네 병이 이미 너에게서 떨어졌다.” 사람들은 물론 자기 자신까지도 ‘죄의 대가’라 여긴 그것을 죄가 아니라 ‘병’이라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18년간 그녀를 묶고 있었던 ‘죄인’이라는 낙인, 절망, 그리고 굳은 허리까지 풀어집니다.
묶인 것을 풀어낸 예수님의 모습에 서로 다른 2가지의 반응이 나타납니다. 치유받은 여인은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그런데 곧바로 회당장을 위시한 주변 사람들이 예수님께 항의합니다. 아무런 일도 하지 말아야 할 ‘안식일’에 치유행위를 한 예수님을 지탄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라 말씀하신 예수님까지 자신의 생각으로 또다시 묶으려 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에게 이렇게 답하십니다. “이 여자도 아브라함의 자손인데 열여덟 해 동안이나 사탄에게 매여 있었다.”
예수님을 통해 묶임에서 해방된 여인이 하느님을 찬양한 것과는 다르게 이들은 또다시 풀어진 것을 묶으려 안간힘을 씁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자신의 생각으로 끊임없이 묶는 자, 타인을 매는 자를‘사탄’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매여 있는 것을 ‘푸는 자’로 살아가셨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자녀이며,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모든 것을 풀어내는 것에 온 힘을 다하셨습니다. 병자를 만나 낙인을 풀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와 함께 식사하며 상심을 푸십니다. 종국에 부활과 승천하심으로 인간의 가장 큰 두려움인 ‘죽음’까지도 풀어내십니다. 그분의 은총을 받은 그리스도인인 우리 역시 하느님을 찬양하며‘푸는 자’로 살아가야함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그 길에 주님의 크신 사랑과 자유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