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부의 말씀을 전하십니다. 이 말씀은 마태오 복음에도, 마르코 복음에도 약간 다른 형태로 등장합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형태는 다르더라도 전하려는 뜻은 같습니다. 자신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부인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너무나도 잘 알려진 말이지요? 이 구절들을 접한 많은 사람은 이 구절을 ‘예수를 따르려면 고생이나 수모, 희생쯤은 각오해야 한다“는 식으로 이해하곤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윤리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해석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구절에는 이 차원을 넘어서는 깊은 뜻이 또 하나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말 그대로 자기를 버리는 것이,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 제자로서 사는 일의 출발점이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생명을 가진 우리 인간에게 비극이자 운명인 것은 나 자신의 생존을 위해 분투해야 하는 숙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애써야만 합니다. 이를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자로 사는 일도 그렇게 어려운가 봅니다. 예수님은 ‘나’라는 굳건한 보물, ‘나’라는 정체성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요구하십니다.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을 죽이는 것이 신앙의 근본적인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껏 나 자신을 중심으로, 내 목숨, 내 위신, 내 재산을 지키기 위해 이기적으로 살아왔던 내 삶을 포기하라는 것, 내 목숨을 보존하는 데 급급했던 내 삶을 돌이키라는 것이 제자들에게 전해진 예수님 당부의 핵심입니다.
바울로 성인도 이 말씀의 핵심을 짐작하고 있던 듯합니다. 그는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옛 생활을 청산하고, 정욕에 말려들어 썩어져 가는 낡은 인간성을 벗어버리고, 마음과 생각이 새롭게 되어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새 사람으로 갈아 입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금의 나 자신에 대해 죽을 때만 새로운 나로 되살아난다는 역설, 죽음과 부활의 역설을 바울로 성인은 알고 있었습니다.
신앙의 길을 짧은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면, 결국 ‘나 자신’이라는 껍데기를 벗어 던지는 일, 자기 자신이 궁극적인 대상이 아니고 자기 자신을 죽이는 체험을 지날 때야 본래 자기 자신의 근원, 자신을 살아있게 하는 궁극적인 실재,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다는 말로 줄일 수 있겠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회심이고 참회이며, 기도와 예배, 수련과 수행의 본래적인 목표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