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서 보라 -
능동적인 기질을 가진 안드레아는 예수님께 단도직입으로 대화를 텄고 그분과 함께 묵게 되었다. 예수님과 공유했던 시간이 그에게 얼마나 감동적이었던지 복음서에는 “때는 오후 네 시쯤이었다.”며 시각까지 알려 주고 있다. 그러나 ‘이분이야말로 메시아시다!’는 고백까지는 적어도 빛과 어둠을 가로지르는 질곡이 있었을 것이다. 주님을 만나는 여정은 탐험과도 같다. 이끌림만 있을 뿐 정체가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현장 체험으로 세계의 몇몇 그리스도인 공동체 마을에 갔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공동체의 사립문을 들어서자 아직도 복음을 해석 없이 따르고 사는 노아의 후예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에 놀랐던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고백하는 신앙은 무엇이었으며, 사제로서 선포한 것들은 정말 나의 믿음이었는가?
달은 어디에서 보아도 같은 달이지만 창틈으로 보는 모습과 마당에 나와서 보는 모습, 그리고 동산에 올라가 보는 모습은 같지 않다. 깊숙이 들어가는 탐험에는 특별한 세계가 있다. 수도자나 사제의 성소를 바라보는 것도 그와 같다. 전해 듣는 것과, 직접 성소 모임에 참여하는 것과, 들어가 살면서 체험하는 것은 결코 같을 수 없다. 주님을 만나는 데는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하고 문을 두드리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붙잡혀 끌려가는 현상이 나타나거든 몸을 맡겨야 한다.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성소자는 성소에 뜻을 둔 이들을 벗 삼아 함께 어울리려 대화하고 토론하며 생활과 의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유유상종의 공동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