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5주일이자 어린이주일이다. 어린이가 한 인격체로 대접을 받지 못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과잉보호와 유해매체의 위험 속에 있다. 어린이들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사도8:26-40) 전도자 필립보가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한 사실에 관한 기록이다. 주의 사자가 필립보에게 나타나 예루살렘에서 가자로 내려 가는 남쪽 길로 가라고 명하셨고, 그곳에서 수레를 타고 성경을 읽고 있는 내시에게 나아가라고 명하심으로 복음 전파를 위한 만남을 이루었다. 당시 사람들은 항상 글을 큰 소리로 읽었기 때문에 필립보는 글 읽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내시가 궁금해 한 성경 귀절은 ‘고난 받는 종’이 누구냐는 것이었다. 필립보는 이 말씀을 토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했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시는 빌립보의 가르침을 받아들였고 세례 받음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예수 부활이 갖는 구원의 능력은 구하는 자에게는 누구에게나 열린 사건이었다.
(요한1서4:7-21)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사랑이 심긴 곳에 사랑이 열매 맺는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심은 서로 사랑하게 하심이다. 우리의 사랑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 사랑이 계심으로 가능하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형제에 대한 사랑에서 입증되어야 한다. 참된 사랑은 하느님과의 관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의 관계에 까지 그 영역이 확산되어야 하는 것이다.
(요한15:1-8)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통해 예수는 자신과 긴밀한 신앙적인 유대를 맺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데 열매 맺는 일이 근본임을 말한다. 관계성을 떠나는 것은 열매 맺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고 멸망과 저주로 나가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과의 관계 안에 머물러 있다면 그들은 무엇을 구하든지 응답받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며 열매를 맺을 때 하느님의 능력과 권세가 나타나게 된다. 주님 안에 거하는 자로서 주님의 이름에 합당하게 사는 것은 , 곧 가지로서 나무에 붙어있는 삶이 전제되는 것이다. 기도는 먼저 기도자의 삶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