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를 넘어서
사순 5주일. 우리가 함께 들으신 복음 말씀은 여러분께서 너무 잘 알고 계시는 ‘향유 부은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4복음서에 모두 등장합니다. 예수님 옆에서 그분의 삶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이 사건은 너무도 강렬한 일이었나 봅니다.
오늘 복음말씀을 보시면, 이 여인은 라자로의 누이 마리아라고 소개됩니다. 그녀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온통 여러 가지 일에 마음을 쓰며 분주했던 마르타와는 달리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던 여성이었습니다. 어쩌면 유일하게 그분의 말씀을 알아듣던 제자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다른 남성 제자들과는 다르게 그녀는 지금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것이겠지요. 예수님께서 지금 걸어가시는 길이 어떤 길인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누가 더 높은지를 놓고 싸우며, 자신들의 출세와 안위를 이야기하는 제자들 사이에서, 그녀는 죽음으로 향하는 예수님의 여정을 깨닫고, 함께 참여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당시 예수님 곁에 있었다면, 이 여인을 어떻게 바라보게 될까요?
예수님의 발치에서 그분의 말씀을 알아듣고, 내가 자랑으로 여기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분의 길을 따라가는 마리아는 우리 신앙의 모범이 됩니다. 합리성과 실용성을 강조하고 명분을 내세우며 가장 보편적이고 익숙한 방법이 더 하느님을 위하고 교회를 위하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대신, 낯선 신비 자체이신 하느님을 정성스레 맞이하고 있는 이 여인을 보십시오. 낯선 길, 죽음이라는 길을 거부하지 않았던 예수님과 그 낯선 길을 가는 주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그 발 앞에 봉헌한 그녀를 바라보며, 진정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진정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일의 시작은 우리가 희망이라고 여기던 것, 우리가 자랑으로 여기던 것,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던 것, 편안하게 생각하던 것들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길이 들어 익숙해진, 보기 좋은 옛길에서 벗어나 낯선 길을 가는 것은 위험천만하고 철없는 짓으로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길 안에 신앙이 움틀 자리가 마련됩니다. 우리는 그렇게 알 수 없는 내일로 나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