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도란 삶의 상태(a state of being)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제자도는‘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제와 관련되며, 우리가 내리는 결단이나 믿는 내용뿐 아니라 삶의 상태까지 다룹니다. 요한복음 시작 부분(1:38—39)을 보면 인상 깊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세례 요한의 두 제자가 예수께 찾아와 "라삐, 묵고 계시는 데가 어딘지 알고 싶습니다" 라고 묻자, 예수께서는 "와서 보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날 예수와 함께 지내게 됩니다. 요한복음에서 우리는 제자도에 관한 사고의 토대를 이루는 개념이 이처럼 함께 묵는 일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요한복음 15:9절, 10절에는‘머물다’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이것이 예수와 제자들의 이상적 관계를 설명하는 말로 사용됩니다. “그러니 너희는 언제나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다시 말해, 우리가 제자가 되는 길은 이따금씩 얼굴을 들이미는 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제자도는 원래 그리스어의 엄격한 문자적 의미로‘학생이 됨’을 뜻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얼굴을 내미는 일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제자도는 드문드문 이어지는 간헐적 상태가 아니라 지속적 관계를 가리킵니다. 고대 세계에서‘제자’가 되는 것은 오늘날에 비해 훨씬 더 이런 모습에 가까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만약 오늘 여러분이 유망한 학생을 앞에 세워 놓고, 학생 됨의 본분은 스승의 모든 말을 꽉 붙잡고, 스승이 가는 곳마다 따라가고, 스승의 입에서 떨어지는 보화 같은 지혜를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자 스승의 집 문 앞에서 잠을 자고, 스승이 식탁이나 거리에서 어떻게 처신하는지를 지켜보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에게 돌아올 응답은 결코 온화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스승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바쳐 한 공간에 살면서 같은 공기를 마시는 일이었으며, 드문드문 얼굴을 내민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제자’곧 배우는 자가 된다는 것은 쉬지 않고 바라보며 귀 기울여 듣는 일로 이루어지는 삶의 상태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제자가 된다는 것은 사막의 교부들의 금언집에서 만나는 수련 수도사의 형편과 많이 비슷합니다. 수련자들은 진리를 배우려는 열망을 품고 어른 수도사의 둘레를 맴돌며 이따금 간곡하게“신부님, 한 말씀 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요청하고, 마침내 상급자가 들려주는“네 죄를 위해 울라”와 같은 심오한 말을 따라 여섯 주에 걸쳐 침묵 기간을 지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장의 짧은 대화( "라삐, 묵고 계시는 데가 어딘지 알고 싶습니다" 예수께서 "와서 보라" 고 하시자 그들은 따라가서 예수께서 계시는 곳을 보고, 그 날은 거기에서 예수와 함께 지냈다.)는 제자도에 관해 살피는 일에서 아주 좋은 출발점이 됩니다. 요한이 이 대화를 자기 복음서의 시작 부분에 배치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요한이 제자도에 관해 말하려는 것을 파악하려면, 제자가 되는 일에 따르는 이러한‘비간헐적’특성, 곧 함께 머무르고 공유한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