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을 쓴다.
<범도>.
소설 제목이다. 방현석이 썼고 지난 6월에 나왔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겠다. 봉오동 전투의 전설 홍범도 장군 얘기다. 상하 권을 합치면 1300 쪽을 훌쩍 넘는 장편소설이다. 이야기 무대는 약 100년 전 조선과 대한제국이 겹치는 시대이고 활동장소는 한반도와 청나라, 북서간도와 로씨아(러시아) 연해주를 넘나든다. 이에 걸맞게 숱한 인걸들이 장강 물결을 타고 흐르듯 등장한다. 주요 등장인물만 해도 얼추 백 명은 돼 보인다. 그래서이다. 1인칭 화자 “나”는 범도이지만 무대 중앙에는 누구라 할 것 없이 맡은 역할에 따라 우뚝 솟아났다가 가라앉기를 거듭한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한 사람의 전기를 넘어 인간 군상과 사건들이 교직하며 따로 서로 빚어내는 교향악처럼 들린다. 작가도 말했다. 홍범도를 위대한 장군으로 그릴 의도가 없었다고. 그 대신 홍범도를 통해 한 시대의 가치가 어떻게 출현하고 낡은 가치를 어떻게 돌파하는지 알고 싶었다고.
소설 속에는 주인공의 피붙이들과 조선 동포들이 많이 나온다. 적과 동지, 유무명 독립투사들과 한학과 신학문에 두루 밝은 지사들이 나온다. 한바탕 난장에 아름다운 일만 벌어질 리가 없다. 이념과 노선, 계급 갈등이 깔려 있는 데다가 서북파, 기호파 같은 지역 반목도 한몫 거든다. 의형제로 맺은 동지일지라도 변절과 배반의 지뢰밭이 곳곳에 숨어 있다. 그런가 하면 유림 거두와 지체 높은 양반 후예들이 헛기침하며 의병 깃발을 높이 들고 진군한다. 최신무기로 무장한 정예 일본군을 상대해야 하건만 애초 전술 개념 같은 건 없다. 허술한 구식 총에다 화승총으로 무장했지만 그나마 충분하지도 않다. 어마무시하게 펄렁이는 인.의.예.지.신 깃발만이 장대하다. 우리에게는 적들이 갖추지 못한 대의가 있거늘... 이들 앞에 홍범도 포수부대는 “상것”들이다. 특급 저격수 여인 “진포”는 그들에게 요망하고 해괴한 존재로 비칠 뿐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상것인 데다 여자로 태어났다면 서너 겹의 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다.
유명인도 실명으로 여럿 등장한다. 이를테면 대한의군 우병장 참모중장 안중근, 왕실 최측근이자 로씨아 공사인 리범진과 그 아들 리위종. 무장투쟁을 반대하면서도 독립운동에 크게 헌신한 은자형 지사 최재형.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 성재 이동휘, 자字가 여성汝聖인 의병장 유인석, 나중에는 이 유림 거두가 범도에게 곡진하게도 자字를 붙인다. 같은 돌림자인 여천汝千이다. 늙고 지친 몸으로 대국 청나라로 갔으나 무장해제당한 후 만주 땅에서 쓸쓸하게 눈을 감는다. 그리고 아아~ 동학 2대 교주 해월 최시형. 해월은 이웃집 며느리를 한울님으로 불렀다. 철부지 아이도 그에겐 한울님으로 섬길 대상이었다. 그 밖에도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혹시 여인 김수라를 아시는가? 약관 20대 나이에 하바롭스크 극동 인민정부 외무장관이었던 김 알렉산드라의 조선 이름이 수라였다. 또 있다. 범도가 극진히 사랑했던 여인 백무아다. 무아는 일본인에 능욕당한 후 아미리가(미국)로 떠나지만 끝까지 뒤에 숨어서 홍범도를 돕는다. 애절하기 그지없는 두 사람의 사랑이 두고두고 가슴을 파고든다.
홍범도는 19세기 후반 평양에서 하층민으로 태어났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갖은 고생을 다하며 자랐다. 국망기 항일연합포연대를 이끌며 일제 침략에 온몸을 던져 맞서 싸웠다. 무섭고 잔악한 일제 황군과 싸운 크고 작은 131회의 전투에서 한 번도 지지 않았다. 누구보다 오래 싸웠고 가장 크게 이겼다. 그 한가운데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이 무지개처럼 빛난다. 홍범도 부대는 열흘 넘게 잠 못 자고 굶주린 채 “쥐새끼”처럼 도망 다녔을지언정 숨이 다할 때까지 절개를 지켰다. 포수는 가늠자 위에 올라온 표적을 단 한발에 고통 없게 쓰러트려야 한다. 그 목표가 영물인 범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게 포수의 윤리다. 범도는 전투를 치르며 수많은 동지들을 산야에 묻는다. 격렬한 전투가 후벼 놓은 상흔들이 살아 남은 사람들을 괴롭힌다. 비록 대의에 어긋나지 않았다 할지라도 이따금 살상행위에 따르는 슬픔이 포개진다. 그러한 성질의 슬픔이 동지들 너머 적군에게 번져간다. 자리 욕심도 없었다. 늘 한 발짝 뒤로 물러나며 공적은 타인에게 돌렸다. 참으로 순정하기 이를 데 없는 독립투사였다.
소설은 무엇보다 재미가 있어야 한다. 무척 재미있다. 사흘 동안 소설 속 인물들에 사로잡혀 울고 웃으며 성내며 열병 앓듯 읽었다. 작가는 작품을 구상하고 현지답사와 수많은 증인들과 대담하며 그렇게 13년을 거친 다음에 책으로 묶어 세상에 내놓았단다. 작품을 관통하는 문체에 눈이 간다. 간결한 단문에 속도감이 붙는다. 때로는 간결하다 못해 건조하기까지 하다. 두툼한 책갈피를 넘기다 보면 그런 무심함이 콧마루를 치고 간다. 내 역량 밖의 발언이지만 문학적 성취 또한 거뒀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을 덮고 나서 밀려들었던 감동의 파도. 정녕 나라를 빼앗긴 못난 조상들이었는가? 아니다, 우리에게 이만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있었다. 100년 전 이 땅에 이만한 시야를 확보했던 위인들이 삶을 영위하셨다. 우리 후손들이, 나라와 겨레의 미래는 물론 세계사적 차원에서 이상향의 지평을 조망했던 이만한 선조들을 보유했었다. 우리 조선 여인들이 시대의 모멸과 고초의 격랑을 헤쳐가며 근대성의 주춧돌인 인간해방을 위해 그렇게 징검다리를 하나둘 놓았다. 나는 소설을 그렇게 읽었다. 그리고 언제나 현재 시제로 읽었다.
방현석 작품은 처음이다. 홍장군 전기나 평전을 처음 대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홍범도 하면, 누구나 즉각 요즘 벌어지는 육사 교정 흉상들과 독립운동실 철거소동을 떠올릴 법하다. 시의상 전혀 무관하달 수 없겠으나 그보다 앞서는 이유가 있었다. 지금 왜 홍범도인가? 좋은 작가는 좋은 독자가 만든다. 10여 년을 발품 팔면서 혈서 쓰듯이 써내려간 작품을 지나치면 안 되리라는 의무감 같은 것. 현재 시제로 읽었다고 했다. 역사는 반복하는가? 주제 넘게 거창한 담론을 꺼내자는 게 아니다. 역사는 반복하는 것 같다. 문제의 근원을 해소하지 않고 섣불리 봉합하려 들면 반복되는 게 아닐까.
읽는이 마다 독후감이 다르리라. 같은 반응을 기대하지 않는다. 수용 태도에서 갈라지든 호오감정에서 엇박자가 나든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