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주위엔 영화관이 없다. 열흘 전쯤 뒤늦게 <파묘>를 보려고 서울 종로 소재 상영관 두곳을 기웃거려봤다. 두곳 다 다른 작품 두개가 걸려 있을 뿐, 헛걸음을 쳤다. 그러다가 가까운 구리 CGV에서 이 한물 간 영화를 재상영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한걸음에 달려가 관람했다.
두루 알려졌듯이 이 무덤 파헤치는 영화가 나온 시기는 지난 4월 치뤘던 총선거 전이었다. 그래서 거의 같은 때 출시된 <건국전쟁>과 흥행을 다툴 수밖에 없었나 보다. 제작자들(또는 감독)이 이 같은 싸움을 예상했을까? 그건 모르겠다. 코로나 감염병이 몰고온 충격이 아직도 말끔하게 가시지 않은 '비대면 시대'다. 천만 명 넘는 관객수를 달성한 파묘 감독이 이 같은 흥행성을 겨냥했는지 궁금하다. 아무튼 영화만큼 시류를 타는 게 어디 있을까 싶다. 이른바 오컬트Occult물에 이끌린 건 아니다. 시류 속에서 민심을 읽을 수 있으려니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섞이며 영화를 봤다고 하는 게 정확하다.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본다. 3부로 이어지는 영화가 좀 길게 느껴졌다. 상영 시간이 얼추 두 시간 반이 넘는다. 천만 관객들이 선택한 영화다. 그러니 이에 엇박자를 낸다는 건 불편한 일이다. 한데 내가 내린 종합 평점은 그렇게 후하지 않다. 70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말하자면 영화적 성취도에 비춰 그렇다는 말이다. 비록 비전문가이지만, 주제와 조응하는 (심미적) 일관성, 영상, 명대사의 집이라 할 각본, 배우들 연기에 중점을 두고 내린 결론이다.
영화가 시작되고 첫머리에서 던지는 화두는 그럴싸하고 묵직하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는다.그런데 세상에는 이와 반대로 눈에 안 보이거나 못보는 게 얼마나 많은가. 오컬트Occult란 이렇게 인간 시야에 은폐된 불가사의한 영역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오컬트 영토와 현대과학 사이에 만나는 접점은 정녕 없을까? 풍수지리가 딛고 선 음양오행설의 지반은 결코 허약하게 보이지 않는다. 이를테면 일본이 불이라면 조선은 바람이다. 그럼 중국은? 물이다. 현대과학의 저수지 노릇을 하는 미국에게도 이에 맞춤한 개념이 있음직하다.
영화는 이러한 오컬트 문법에 매우 충실해 보였다. 3부에서 드디어 일본 제국주의 악령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무라이 악령이 휘뚜루마뚜루 출몰하면서 애먼 한국인들의 목숨을 앗아간다. 인적 끊긴 강원도 어느 깊은 산속 밤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맹렬하게 타오르는 거대한 불덩이. 이 사악한 불덩이의 계보는 지금의 21세기에서 19세기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구국일념으로 북벌정복을 외쳐댔던 죠수와 사쓰마 번 사무라이들에 그 뿌리가 닿는 것 같다.
일제가 조선 심장에 박아놨다는 쇠말뚝은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쇠말뚝'은 실재했다. 지관(최민식)이 무덤 주위 흙을 입으로 맛보고 나서 뱉어내는 말."악토야, 이런 악토가 없어." 그 악토의 주인은 나라를 팔아먹은 조상이다. 100년이 가도 썩지 않은 향나무관에 누워 있는 옛 고관대작 할아버지.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형태의 쇠말뚝이 있었다니! 바로 그 관 밑에 수직으로 박아놓은 또 하나의 시커먼 관이 100년 세월 동안 은폐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까지다. '쇠말뚝'이 흉측한 실체를 드러낸 이후로 영화는 뒤로 갈수록 긴박감이 사라지면서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그 까닭이라면, 이야기가 관객이 예상하는 바와 1도 틀리지 않고 전개되는 탓이 크다. 영화적 서사가 점점 통속극으로 치달으면서 기괴한 사건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그건 다름아닌 악령 준동과 빙의현상이 창궐하는 소재주의의 함정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은유나 환유로 처리했으면 어땠을까 싶은 대목이 눈에 띄었다. 더 나아가 인식의 크기와 넓이도 짚고 싶었다. 현대과학은 지구가 단일한 체계로 움직인다고 증언한다. 음양오행의 조화와 함께 서로 등대고 밀쳐내는 상생상극 정신을 오늘날 생태학적 각성과 연결지을 순 없었을까. 그랬다면 지나친 욕심이자 엉뚱한 비약이 될까?
배불뚝이 지관(최민식)이 담배 피는 장면이 서너 번이나 나온다. 연기가 나오는둥 마는둥 하는 최신 전자담배 파이프다. 미국에 사는 3-4대 째 한국후손들 생활은 호화롭기 그지없다. 바꿔 말해 21세기 현장을 넌지시 암시하는 풍경들이다. 풍수지리와 음양오행 그리고 거기에 결합한 샤머니즘. 그 발원지가 어디였든 영화를 보면서 문득 오늘날 일본과 중국은 어떻게 이들을 수용하고 있을지 궁금증이 일었다. 모르긴 해도 이 영화를 만든 한국처럼 열심일 것 같지 않다. 만약 그렇다면 100년전 '쇠말뚝' 흉계를 꾸몄던 일본 승려는 이런 조선을 이중으로 농락한 셈이겠다.
최민식, 유해진은 대배우다. 한데 이쪽에 주는 점수도 75점 정도다. 게다가 원로배우 박정자가 나온다. 무대에 선 것만으로 존재감이 충만했을 이 대배우는 아쉽게도 스쳐 지나가는 단역이었다. 반면에 무녀 역 김고은에게 가는 점수는 높다. 90점 이상을 줄 만큼 배역을 잘 소화했다. 이쯤에서 다큐멘타리 영화로 알려진 <건국전쟁>이 왜 <파묘>에 졌는지 궁금해진다. 잘 모르겠다. 건국은 안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