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날 세계, 우리가 만들자
갈림길에 선 민주주의 ④
출처: 2024-12-17 <한겨레 신문>
글쓴이: 이재정 윤퇴청(윤석열퇴진을위해행동하는청년들) 대표
‘탄핵 가 204표’. 국회 본회의장 음성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자 광장에 모인 시민들 사이 환호와 울음이 터졌다. 12월3일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뒤 14일 탄핵소추안 가결에 이르기까지 열하루, 시민이 온몸으로 ‘장갑차’와 군인을 막아내고 광장을 지키며 이룬 결과였다. 함께 민주주의라는 둑을 지어 계엄이라는 파도를 막아냈다. 그날들, 그 광장에 시민 한 사람으로 설 수 있었던 게 그 순간 참 고맙고 뿌듯했다.
그들이 ‘다만세’를 모른 것처럼
우리는 ‘윤석열 퇴진을 위해 행동하는 청년들’(윤퇴청)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광장에 나갔다. 윤퇴청은 ‘청년시민시국선언’을 제안하며 모인 청년들이 ‘계엄의 밤’ 이후 윤석열 탄핵을 위해 더욱 조직적으로 활동하려 결성한 네트워크 모임이다. 윤석열의 계엄 선포를 비판하는 ‘긴급 청년시민광장’, 탄핵 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을 규탄하는 ‘고 국민의힘 장례식’을 열었다.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다른 단체들과 두차례 사전집회를 열어 청년 목소리를 모았다. 집회 풍경이 전과 다르다고들 한다. 아이돌, 스포츠 선수, 프로게이머를 응원하던 응원봉은 민주주의의 상징이 됐다. 윗세대는 ‘다시 만난 세계’(이하 다만세)를 배우고, 청년세대는 ‘민중가요’를 배우고 있다. ‘다만세’를 처음 들었다는 중년 세대 이야기에 솔직히 조금 놀랐다. 그동안 ‘다만세’는 성폭력 반대 집회, 기후정의행진, 퀴어퍼레이드에서 청년들이 가장 자주 부르던 ‘투쟁가’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노래를 통해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희미한 빛”을 쫓았고, “다시 만난 나의 세계”를 꿈꿨다.
앞선 세대가 ‘다만세’를 몰랐던 것처럼 우리도 민주화운동의 소중함을 잘 몰랐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내가 사는 이 땅의 민주주의와 자유가 시민의 희생과 돌봄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몸소 배웠다. 청년사전집회에 참여한 20대 여성은 “계엄사태를 겪으면서 윗세대가 왜 그토록 검찰개혁이 시급하다고 이야기하는지 이해하게 됐어요”라고 했다. “우리가 윗세대를 이해하게 된 것처럼, 우리 세대가 느끼는 여성·퀴어·기후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이해해달라”고 했다. 성별도 연령도 구분되지 않는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다양한 색깔의 민주주의
우리는 그동안 광장에서 ‘윤석열 탄핵’이라는 단일한 목소리를 내는 동시에, 다양한 구호와 메시지를 나누어 들었다. 색깔도 모양도 제각각인 응원봉처럼 각자 꿈꾸는 미래와 개혁과제가 다채롭게 쏟아졌다. 어느 청년은 “불안정한 노동에 내몰리고 일자리조차 구할 수 없어 허덕이는 상황에, 계엄령으로 경제를 망가뜨리고 안보를 위협하는 사람이 국가 원수라는 게 비통하다”고 했다. 포고령에서 ‘전세사기 피해자’를 떠올린 청년도 있다. 국가가 전 국민을 ‘입틀막’ 한다면, 피해 구제를 요구하는 전세사기 피해자 목소리도 가로막힐 게 우려된다는 얘기였다. 또 다른 청년은 이태원 참사로 159명이 목숨을 잃어도 책임 회피에 급급했던 정부를 기억하며, “이번엔 정말 누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거리에 섰다”고 했다.
슬픔과 분노를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동시에 서로의 좌절이 닮아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닮은 좌절은 연대의 근거고 희망이었다. 성소수자인 한 청년은 “이 사회에서 늘 존재를 부정당해왔지만, 광장에서 대중들과 함께 윤석열 탄핵,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는 동안은 나도 이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참 좋았다”고 했다. 집회 곳곳 수많은 무지개색 깃발이 나부꼈다. 민주주의라는 둑을 견고히 쌓는 동시에 그 둑이 얼마나 다양한 색깔과 모양의 재료들로 이뤄졌는지도 주목해야 한다는 걸 광장은 일깨웠다. 같이 응원봉과 깃발을 흔들며 연결됐던 감각으로, 다양한 우리가 함께 누릴 더 좋은 사회와 민주주의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주고받은 핫팩과 간식, 생리대, 선결제된 커피로 성별·나이·정체성이 달라도 연결되고 연대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우리는 서로에게 기대어 신발 끈을 동여맸다.
목숨 건 용기에 정치의 답은
윤퇴청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보고, 혼자 또는 친구들과 삼삼오오 함께한 이들이 많았는데, 청소년도 적잖았다. 이들은 유독 “목숨 걸고 나왔다”는 말을 많이 했다. 청소년들 사이에선 ‘집회 가면 위험하다’, ‘가면 죽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었다. 집회에 대한 생경함에 계엄 트라우마까지 겹친 탓이다. 누가 시키거나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에스엔에스로 사태를 접하고 나라의 중대한 위기를 스스로 판단해 거리로 나온 청소년의 용기는 상상 이상으로 위대하고 엄중한 것이었다. 그 마음에 정치는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윤퇴청은 이런 목소리를 더 많이 모으기 위한 광장 역할을 하기로 다짐했다. 윤석열 탄핵이 헌법재판소 결정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울 것이다. 내란 주범들의 체포와 구속, 유죄를 요구할 것이다. 청년들이 꿈꾸는 정의로운 미래를 이야기하고 주장과 대안을 정리할 것이다. 다채로운 광장의 요구가 묻히지 않도록 불평등, 양극화, 기후위기, 디지털 전환 등 다양한 의제에 청년 목소리를 모아낼 것이다. 다양해서 더 단단한 민주주의를 만들고 싶다. 윤석열 한명만 구속되고 파면되면 사회가 나아지리라고 쉽게 낙관하지 않는다. 반복되는 역사를 보면서도 그런 낙관을 품을 정도로 우리 세대는 단순하지도 순진하지도 않다.
집회에 올 동료들을 위해 여분의 자리를 맡고, 그 자리가 채워지길 기다리는 설렘이 참 좋았다. “우리는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듣지 않기로 결심한 세대”,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만든다”며 긴말 하지 않아도 서로의 감각이 통하는, 거리에서 함께 만들어낸 언어들도 좋았다. 앞으로 더 많은 광장을 통해 우리들의 언어를 축적할 것이다. 더 많은 마이크와 스피커, 청중이 필요하다. “특별한 기적”을 기다리진 않지만, “알 수 없는 미래와 벽”을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열정이 우리에게는 있다.
이재정 윤퇴청(윤석열 퇴진을 위해 행동하는 청년들) 대표
옮긴이 주:
1. 원문 기사에는 사진이 두 장 붙어 있다. 하나는, 12.3 내란사태 핵심 피의자인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다음날인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시민들이 모여 헌법재판소에 조속한 탄핵 심판을 촉구하고 있는 사진이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다른 하나는 글쓴이 이재정 양 본인이 집회현장에서 찍은 자신의 사진이다. 둘 다 매우 역동적이고 진실로 아름다웠다. 한데 어쩐 일인지 이 게시판에 온전하게 옮기는 게 쉽지 않았다. 몇 번 실패 끝에 전기한 두 사진 없이 글만 옮기게 되어 못내 아쉽다. 원문 주소를 찾아 보시기 바란다.
2. 사상 세 번째 대통령 탄핵이 가결됐지만 두루 알고 있듯이 아직도 넘어야 할 고개가 남아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다가올 미래를 위해 "대전환의 희망을 잉태"하고 있어야만 한다(조희연 전 서울 교육감). 다른 한편으로, 이번 친위 쿠테타 실패 사태 직후, 가장 많이 떠돈 말이 있다면 그건 비현실감 또는 초현실적 사태였다. 이런 말들은 무엇을 함의하는가. 우리가 지녔던 희망과 환상과 더불어 좌절과 허무감, 과거와 현재의 기괴한 동시성이 서로 등을 맞대고 응축돼 있는 듯한 언어... 그러하기에 현실은 떄때로 허구를 능가한다고 하지 않던가. 압축 산업화의 성취가 크고 빛을 낸다면 압축 민주화의 응달도 있을 법하다. 다시 말해 경제성장의 달콤한 과실이 민주주의의 성숙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대전환의 시대에 반드시 성찰해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3. 두루 보셨듯이 이번 탄핵가결에 공을 세운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런데 누구라 할 것없이 젊은 한국의 딸들에게 크게 빚진 기분이다. 계엄 선포날에 무서운 계엄군의 총구를 휘어잡은 '여전사'가 있었는가 하면 탄핵표결에 홀로 참가해 민의를 대변한 여당의 여성 대표, 외국 매체와 능숙하고 세련된 어법으로 대담한 여의원들이 있었다. 위 글쓴이 이재정이 그랬듯이 응원봉의 빛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의 물결 속에서도 젊은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탄핵물결에 합류했던 성공회 시위에서도 맨 앞에 선 수녀님들이 고요히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 뿐 아니다. 저 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인류는 언어로 서로 연결돼 있다고 역설하며 생명과 사랑을 끊임없이 호명했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을 또렷히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