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담판”이란 불리던 6.12 싱가포르 북미회담이 어제 끝났다. 이날 채택된 공동성명에 담긴 골자는 네 갈래다. 북미관계 정상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화해 조치로 한국전쟁 전사자의 유해 송환이다. 그리고 성명서엔 없으나 구체적 이행방안으로서 여러 후속조치들이 이어지리라는 점까지 확인했다.
핵심의제라 할 비핵화와 이에 상응하는 체제보장은 추상적 수준에 그치면서 마무리됐다. 때문에 이를 일컬어 CVID에서 알맹이인 VI(검증/돌이킬 수 없는)를 쏙 뺀 채 어물쩍 CD만 합의한 협상이라고 깎아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미국 주류언론은 비판일색인가 보다. 회담의 이익은 김정은이 챙기고 그 뒤의 최종승자는 중국이라는 비난도 가세한다. 그 밖의 나라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실망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곰곰이 들여다보자. 정말 그러한가. 우리의 눈도 그동안 극적 타결식의 시나리오에 알게 모르게 길들여진 탓은 아닐까.
반면에 회담이 거둔 성과를 칭찬하면서 환영하는 나라들도 있다. 바로 EU다. 공동성명은 정상회담에서 나올 수 있는 높은 수준의 합의방식이다. 이 점 결코 가볍게 평가할 수 없다. 70년 적대관계를 일거에 날리면서 두 정상이 손을 맞잡은 상징성만 해도 세기의 담판에 충분히 값한다. 정상회담은 평화체제를 착근시키려는 노력의 출발선이 아니던가. 핵무기/물질/시설/소프트웨어라 할 지식의 전면 해체에 관한 한, CVID의 논리적 정합성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CVID가 완전한 비핵화를 가늠하는 유일의 척도일 리는 없다. 만능의 무슨 메트릭스도 아니다.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하고, 이를 실천하는 행동이 순차적으로 따른다면, 이런 방식도 지극히 합리적이지 아니한가.
성명서 서명식을 마친 후, 이어진 기자회견 장면을 시청했다. 트럼프 대통령 혼자 수많은 내외 언론매체를 상대로 숨 가쁘게 응대하고 있었다. 예상했듯이 공동성명이 담지 못한 북한의 인권문제, 예의 CVID 누락을 질책하는 듯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이때 대통령 입에서 한미연합훈련 중단, 주한미군 병력 감축(또는 철수?) 같은 놀라운 발언들이 튀어 나왔다. 온몸을 써가면서 정력적으로 대응하는 트럼프의 모습. 솔직히 감동했다. 게다가 어느 틈엔가 그에게서 문득 ‘거인’의 풍모를 느꼈다. 일찍이 미국의 정치적 신사들, 이를테면 존 케리, 버니 샌더스, 버락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이었다면 과연 이렇게 담대한 구상을 실천에 옮겼을까.
내 책상 위에 핵단추가 더 크다. 화염과 분노로 한 나라를 전멸시킬 수 있다. 천 명이나 삼천 명이 죽은들 모두 그네들 땅에서 벌어질 일이다. 불과 수개월 전에 그가 뱉어낸 험악한 말의 성찬이다. 그런가 하면 서울은 휴전선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전쟁이 나면 2천만 명, 3천만 명이 죽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찌 전쟁을 얘기할 수 있겠는가. 전자와 후자 모두 똑같은 사람이 한 말이다. 기막힌 역설이자 반전의 현장에 선 느낌이었다. 다만 이 거인한테 바라는 게 있었다. 부디 인간애를 동인으로 한 발화이기를. 한반도의 분단에 가장 책임을 져야 할 나라가 미국임을 알고 한 발언이기를 빌어봤다.
북미 모두 회담장으로 나오게 한 구조적 요인이 있으리라. 그러니 이런 구조를 못 보고 지도자 개인에 의존하는 태도는 위험할지 모른다. 마치 나무는 보되 숲을 못 보듯이. 역사의 우연성에 맡기려는 태도 또한 마찬가지이리라. 그러면서도 아무려나 역사의 물결이 옳은 방향으로 흐른다고 믿어본 시간이었다. 그리고 두 정상을 떠밀고 여기까지 다다르게 한 힘이 다름 아닌 해빙의 역사 물결이라고. 회담 결과, 한반도의 평화를 구축하는 도정에서 남북의 활동공간이 더욱 넓어지고 중요해졌다. 우리 앞에 펼쳐진 희망의 공간이면서도 동시에 한층 무거운 과제를 안게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