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너댓새 동안 벌어진 사태에 어안이 벙벙하다. 순탄하리라 예상했던 세기적 싱가폴 북미회담. 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널뛰기를 거듭했다. 알다시피 그 시발점은 트럼프의 느닷없는 6.12 북미회담 취소 선언이었다. 그때가 5월 24일 금요일 자정 즈음이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25일 북한은 외무성의 이름으로 회담을 재개하고 싶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어리둥절할 만큼 이전과 달리 정중한 외교적 언술이었다. 26일에는 전격적으로 4차 남북정상 판문점회담이 뒤를 이었다. 그야 말로 형식을 파괴하면서 펼쳐진 ‘벙개’였다. 그런데 겨우 하루가 지난 27일 놀랍게도 미국이 회담 재개를 공식화하며 화답했다. 동시에 북미 대표들이 회담을 위해 판문점에서 의제를 사전 조율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확인됐다. 다행스럽게도 28일에는 한걸음 더 나아가 남북미 3자회담과 종전선언 발표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은 6.12 북미회담의 예비회담 격이었다. 남북이 손잡고 일궈낸 역사적 성과 못지않게 그 한계 또한 인식하고 있었다고 할까. 그럼에도 요 며칠 사이 전개된 사태는 어지럽고 당혹스럽다. 일찍이 예정됐던 남북고위급 회담이 깨질 때에도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은 한결같았다. 북미회담의 판까지 깨지는 않으리라 낙관했다. 결과적으로 그런 예상은 빗나간 셈이다. 한편으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도 든다. 다만 사태를 숨 가쁘게 추동하는 모멘텀이 무엇인지 아는 거야말로 중요하다. 지구상 마지막 냉전체제를 끝내고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려는 소망에서다. 분단을 극복하는 동학을 이해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4.27 널문리 선언에 녹아 있다. 남북이 따로 살든 같이 살든 서로 잘 사는 데를 바라보자고. 다시 말해 우리의 소원은 통일보다 평화정착이 우선이라고.
6월의 싱가폴로 가는 길은 왜 이렇게 덜커덩거릴까. 트럼프의 ‘롤러코스터 식’ 협상의 기술이거나 변덕 탓인가. 초강대국 면전에 날리는 북한의 험한 수사 때문인가. 북핵 폐기와 체제안전 보장을 놓고 벌이는 샅바싸움이라면 이해가 간다. 이제는 일반시민도 익숙해진 용어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의 순차적 적용에서 양쪽은 접점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빗대자면 CVID(또는 PVID)와 CVIG(G는 체제보장)의 상호 수용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미흡해 보인다. 70년 켜켜이 쌓인 적대감과 불신의 더께를 걷어내는 일부터 쉽지 않다. 여기에 미국쪽엔 하나가 더 붙는 것 같다. 그건 상대방에 대한 깊은 혐오감이 아닐는지. 신뢰를 구성하는 이런 요소들이 틈만 나면 어느 한쪽의 발목을 잡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한국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그만큼 활동공간이 넓어진다는 뜻도 된다.
교착상태의 협상장에 문 대통령이 돌파구를 마련했다. 찬사를 듣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도 두루 살펴봐야 할 게 있다. 한반도 중심의 평화체제의 무대에는 남북미 세 나라만 있는 게 아니다. 주변 열강의 존재들을 빠뜨릴 수 없다. 먼저 최근 북녘 지도자가 이례적으로 잇따라 방문했던 중국이 잡힌다. 이 나라는 정전협정에 서명한 당사국이기도 하다. 두드러지게 안 뜨일 뿐이지 막후에는 버젓이 일본과 러시아가 있다. 북미회담이 성공한 이후에도 이들이 보장하는 한반도 안보야말로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하다. 일본은 어떠한가. 북한과 관계를 정상화하면 당장 식민지 지배에 따른 배상금을 물어야 한다. 이 수교 자금을 놓고 지금 미일이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러시아는 조용해 보인다. 잘 모르겠으나 한반도를 둘러싼 사건들을 그저 팔장 끼고 지켜보고만 있진 않으리라.
북한은 중미대립을 이용해 경제회복을 꾀하는 외교 책략을 구사한다. 선대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의 전략이다. 이런 북한을 사이에 두고 미중은 좀 더 자기 쪽으로 끌어 들이려고 ‘밧줄 당기기’를 한다. 마침 이와 관련 시사주간지 <시사in>의 남문희 기자가 보도한 내용이(558호-"회담취소" 이전에 작성) 이런 정황을 뒷받침해준다. 남문희가 규정한 “북한판 마셜 플랜”에 영향을 끼치는 사태가 발생했을까. 그리하여 트럼프로 하여금 판을 뒤엎을 만한 빌미거리를 제공했을까. 그럴싸해 보이는 설명일 수가 있다. 복잡한 사태의 배후를 꿰뚫어 보기란 무척 어렵다. 하지만 그럴수록 깊은 눈매로 멀리 내다봐야 한다. 이런 안목을 못 갖추면 잔가지의 근심이 잦은 법이다. 지난 일주일 남짓 되는 시간은 우리에게 새삼 지정학적 현실을 일깨워줬다. 우리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교차하는 길목에 서 있다.
북미회담 이후 또는 냉전적 유제가 한반도에서 사라진 이후일지라도 이런 구조는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우리 마음대로 이런 현실을 벗어날 수는 없다. 현실 속에서 우리의 자주적 역량을 꾸준히 키워나가는 수밖에 없다. 4월 말 한반도에 축복처럼 쏟아진 봄기운을 여전히 느낀다. 그때로부터 얼추 한 달이 지났다. 그리고 민족적 서사가 선사한 서러운 감동과 위안을 간작한 채 6월이 다가온다. 6월 12일 싱가폴 북미회담이 성공하길 빈다. 미국 대통령이 말했듯이 평화를 낳는 회담은 모든 당사국들을 포함하여 전 세계에 좋은 것이다. 누구보다도 그 평화회담의 과실을 북녘 동포들이 누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