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장으로서 저는 지난 11월 11일에 발표된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님의 사임 소식에 큰 충격과 슬픔을 가눌 수가 없었습니다. 캔터베리 대주교직은 세계성공회 일치의 중심이며 다른 교단 교회들뿐만 아니라 세상에 성공회를 대표하는 직무입니다. 이번 저스틴 웰비 대주교님의 사임 표명에 저뿐만 아니라 서울교구 모든 신자들도 당황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영국성공회뿐만 아니라 세계성공회 전체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번 사임은 그리스도교의 가치와 선교 사명을 되새기게 하는 사건입니다. 저스틴 웰비 대주교님의 사임 이유는 영국성공회 내 한 선교 단체의 책임을 맡았던 평신도 지도자가 수십 년간 벌인 아동과 청년 대상 성학대와 관련돼 있습니다. 이에 관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그 사람은 세계 각지의 선교 캠프 등에서 수십 년 동안 성추행과 학대를 저질렀습니다.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대주교님이 피해자들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왔으며, 웰비 주교님은 미흡한 조처에 깊이 사과를 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대주교직을 맡기 전에 해당 선교 단체와 관련이 있었으므로 이러한 사실에 관해 인지했으리라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사임 요구도 높아졌습니다. 결국, 대주교님께서는 “교회법적이며, 직무적인 책임을 존중하여” 용기 있는 결단으로 사임을 발표하셨습니다. 세계성공회는 그동안 웰비 주교님의 지도에 따라 <안전한 교회> 지침을 마련하고 정책을 펼쳐왔습니다. 대한성공회도 관구의회를 통하여 <안전한 교회> 협정을 체결하였으며, 서울교구에는 <안전한교회위원회>를 설치 운영하여 교회와 사회 내 성폭력 예방을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이 담대한 정책을 수립하고 지도했던 웰비 주교님이 관련된 사안으로 물러나게 되었다는 사실이 마음 아픕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얼마나 세심하고 사려 깊어야 하는지, 얼마나 용기 있고 살을 도려내고 뼈를 깎는 결단이 있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이 사태에 직면하여, 교구 교회를 대표하는 주교로서, 저와 신앙인은 가장 먼저 피해와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기억하고 격려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동안 백여 명이 훨씬 넘는 피해자들의 아픔과 트라우마는 쉽게 치유할 수 없는 깊은 상처입니다. 아직도 세계와 우리 사회 여러 곳에는 추행과 학대, 차별과 폭력에 고통받으면서도 숨죽이며 살아가는 이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교회는 이들의 신음소리를 들어야 하며,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보살피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교회는 아동, 청소년, 여성, 여러 형태의 약자들이 환영받고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한 곳이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교회 내 성직자들과 지도자들은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고, 사목 적합성을 면밀하게 평가받아야 합니다. 신자들과 더불어 약자들을 향한 관심과 보호를 최우선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이 마음 아픈 사태 속에서, 교구장인 저는 모든 성직자와 수도자, 신자들과 함께 몸과 마음을 다하여 이 사명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며, <안전한 교회>를 만들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이 순간 우리의 마음과 기도는 아직도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피해자들을 향해야 합니다. 또한, 용퇴의 결심으로 신앙인의 책임을 보여주신 웰비 대주교님과 가족을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대주교님의 사임 서신 안에 담긴 뜻과 숙제를 우리 사명으로 삼아 실천해 주십시오. 이후 새로운 캔터베리 대주교의 선정 과정 속에서 세계성공회를 향한 하느님의 도전과 교회의 사명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 서울교구장 김장환 엘리야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