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세상 속에 있으나, 세상과 구별되는 대안 사회입니다. 세상의 위계질서를 당연히 여겨서는 안 되며, 세상 사람들이 하듯이 불행이 닥쳤을 때 희생양을 찾아내서 죄를 다 뒤집어씌우는 일을 해서도 안 됩니다. 강자가 살아남고 약자가 희생되는 것을, 그러려니 하고 보아 넘겨서도 안 됩니다. 이런 것들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세상의 방식, 세상의 권세를 따라가지 않으려면, 혼자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생각과 지혜를 의지하지 말고, 성령의 힘으로 거듭나서, 공동체로 예배하고 사명을 실천해야 합니다. 세상은 저마다 자기를 위해서 편을 가르고 담을 쌓고, 내 편이 아닌 이들을 차별하고 따돌리고 억누르려 듭니다. 교회는 한 분 하느님의 사랑 안에 모든 사람이 하나 되어 감사하며 예배합니다. 교우 모두가 한 분 그리스도의 은총을 통해서 서로 연합 하며 선교의 일을 행합니다. 세상이 미처 알지 못하는 새롭고 아름다운 질서, 하느님의 나라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2020년 서울교구장 주교 사순절 사목교서 中)
특별히 코로나19 전염병 사태 가운데 맞이하는 이번 사순절은 마음이 무거워짐을 막을 길이 없습니다. ‘함께 모여서 기도하는’ 교회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가 세상 사람들에게 위협적이고, 불편한 요소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대한성공회 서울교구는 2월 26일(재의 수요일) ~ 3월 14일(토)까지 감사성찬례를 비롯한 모든 전례와 예배, 공동체 활동을 잠정 중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는 전례와 성사의 가치를 소홀히 여겨서가 아니라 더욱 깊이 살펴서 교회와 사회 공동체 전체의 건강과 일치를 위한 결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로 나가 40일 동안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온갖 달콤한 유혹과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그분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고통 속에서 하느님을 향한 신뢰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더욱 공고히 하셨습니다. 함께 모여 기도하기 어려운 이번 사순절을 이렇게 보내면 좋겠습니다. 외롭고 힘들지만, 이를 통해 주님과 이웃에 대한 감사와 믿음을 재확인하고, 주변의 어려움에 더욱 공감하며 기도하는 사순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희 사목단은 교우분들의 각 가정에서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기도와 묵상, 선행으로 거룩한 사순절을 보내실 수 있도록 안내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주님의 보호하심과 평화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