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이 흘러야 하는 새로운 이유
박병상 | editor@catholicnews.co
체르노빌 핵발전소가 새벽에 폭발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단순한 화재로 보았고 불구경까지 했다. 그래서 희생자가 많았다. 소방관은 당연히 불을 끄러 동원되었지만 대부분 방사능 피폭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세예비치는 ‘체르노빌의 목소리’에서 한 젊은 소방관 아내의 서글픈 사연을 소개한다.
불 끄러 나갔던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임신 중인 신부는 수소문 끝에 대도시 병원을 찾았는데, 그만 얼굴이 무너지고 기침에 내장이 섞여 나오는 남편을 보고야 말았다. “남편이 아니라 핵폐기물”이라며 접촉을 금지하는 병원 측의 제지를 뿌리친 부인은 남편을 끌어안고 키스를 퍼부어 방사능에 치명적으로 피폭되었지만, 남편이 사망한 뒤에도 한동안 살아남았다. 뱃속의 태아가 대신 희생된 덕분이었다.
구소련 당국은 체르노빌 사고를 숨기는 데 성공할 수 없었다. 방사능 낙진은 북유럽에 상당량 떨어졌고, 미리 대처할 수 없던 여성들에게 끔찍한 조언이 흉흉하게 퍼졌다. 암에 걸리기 싫으면 어서 임신을 하고 그 아기를 낙태하라는 권유였다. 몸에 없는 물질이 호흡이나 소화기를 통해 몸으로 들어왔다면, 그 물질은 태아에 집중되니 태아와 더불어 몸 밖으로 빼내야 암에 걸릴 가능성을 줄인다는 소문 때문이었는데, 체르노빌의 소방관 아내가 소문을 몸으로 실증한 셈이었다.
우리나라에 갑상선 암환자가 다른 나라보다 많은 이유를 지나친 검사 때문이라는 말이 돌았던 적이 있다. 병원들의 경쟁으로 첨단 진단 장비를 적극 활용한 예외적인 건강검진 때문이라는 해석이었는데, 아무리 그런 경향이 있는 국가라 하더라도 핵발전소가 오래 가동 중인 부산 기장군과 같은 지역의 갑상선 암환자가 다른 지역보다 5배 가까이 높게 나타난다면 일단 의심해야 한다. 구소련의 체르노빌이나 미국의 펜실베이니아처럼 핵발전소의 치명적 사고가 드러나지 않았어도 방사성 요오드가 지속적으로 지하수나 대기에 배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얼마 전 부산시는 세계 최대 해수 담수화 시설을 갖췄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역삼투압 방식의 대형 해수 담수화 시설을 위해 2000억 원 가깝게 지출한 부산시는 기장군에 하루 4만 5000톤을 공급해 15만 명의 식수를 해결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기껏 담수화한 수돗물에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었고, 다급하게 급수 계획을 1달 연기하겠다고 발표해야 했다. 기장군에서 400미터 가까이 떨어진 바다의 수심 10미터 이상에서 취수했지만 역삼투압으로 요오드를 비롯한 방사성 물질을 제거하지 못한 것이다.
방사성 요오드는 반감기가 비교적 짧아 8일에 불과하다. 일반적으로 방사선을 내뿜는 물질이 반으로 줄어드는 반감기가 10차례 이상 지나면 안전해진다고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그럼에도 기장군 앞바다에 방사성 요오드가 검출되는 건, 고리 핵발전소에서 지속적으로 방사성 물질을 내놓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바와 다름없다. 핵발전소가 가동되는 부산시 일원에 갑상선 암환자가 많은 이유의 강력한 증거가 된다. 갑상선 호르몬을 체내에서 합성하는데 요오드가 필요하지 않던가. 한데, 한 달 뒤 공급하겠다는 담수화 시설의 수돗물에 방사성 물질은 줄어들 수 있을까?
무려 2000억 원 이상을 투자한 부산시는 방사선의 양이 매우 적어 인체에 무해하다고 주장하고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방사선의 양은 아무리 낮아도, 허용 기준치 이내라 해도 의학적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 게다가 방사능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따라서 방사선을 내뿜는 물질과 가까울수록 위험은 늘어난다는 건데, 수돗물은 음용한다. 수돗물에 포함된 극미량의 방사성 물질이라도 몸속에서 방사선을 끊임없이 배출한다면, 그것도 잠깐이 아니라 수돗물을 마시는 동안 지속적으로 배출한다면, 그 물을 마시는 사람, 또는 그 집안의 애완동물도 위험할 것이다. 취수원 근처 해산물도 안심할 수 없다. 먹이사슬을 거칠수록 농도가 짙어지는 방사성 물질은 최종 소비자인 사람의 몸을 피하지 않는다.
▲ 2012년 6월 당시 녹조가 낀 낙동강 성주대교 하류의 모습.(사진 출처 = www.flickr.com)
낙동강 하류에서 94퍼센트의 상수원을 확보하는 부산시는 4대강 사업 이후 취수원이 불안해졌을 게 틀림없다. 지리산 계곡에 상수원을 위한 댐을 추진하고 싶지만 지역과 환경단체의 반발이 거세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생태적 자원을 수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고심 끝에 해수담수화 시설을 확보했을 테지만,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리라 미처 생각하지 않았거나 역삼투압 방식으로 걸러질 것으로 짐작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입자가 매우 작은 삼중수소와 같은 방사성 물질은 아무리 정밀한 역삼투압도 절대 걸러내지 못한다. 부산시의 상수원 대안은 무엇이어야 하나?
운하로 인한 자연성 파괴와 그 대안에 대한 세계적 권위자, 독일 칼스루에 대학의 한스 헬무트 베른하르트 교수는 대형보로 흐름이 차단된 낙동강을 둘러보고 “한 번의 미친 짓은 다른 미친 짓을 부르게 된다!”고 지적했다. 심각한 녹조와 오염발생을 막으려 새로운 시설을 도입해도 소용없고, 그로 인한 피해가 가중된다는 사실을 경험을 근거로 강조했다. 본연의 모습으로 강을 돌이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베른하르트 교수는 화강암 모래가 흐르던 낙동강이 무너지는 현장에서 눈시울을 적셨다. 꿈에 보았던 살아 있는 강이라면서.
화강암 모래의 미세한 틈에 사는 미생물이 강물을 정화해온 낙동강은 400만 부산시민의 상수원으로 최상이었지만 지난 정권이 치명적으로 망쳐 놓았다. 고리 핵발전소는 부산시 기장군 앞바다와 지하수를 돌이키기 어렵게 방사능으로 오염시켰다. 이제 안심할 수 없는 상수원이 사라진 부산의 대안은 해수 담수화일 수밖에 없다. 사고 위험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되는 고리 핵발전소 1호기의 가동을 당장 멈추지 않는다면 한 달 후에도 방사성 물질의 검출이 조금도 줄어들 리 없다. 눈과 귀, 혀로 구별할 수 없는 것이 방사능이므로 부산시가 계획하는 시음회는 수돗물 공급을 결정할 명분이 되지 못한다.
화강암 모래가 강물과 더불어 흐를 수 있도록 낙동강을 한시바삐 재자연화해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4대강의 보를 헐어 내면 된다. 우선 배수갑문을 활짝 열어 강물을 원활하게 흐르게 한 뒤, 보를 하나하나 헐어 내면 낙동강은 예전에 가깝게 건강해질 테니 갑상선 암환자가 많은 부산시의 걱정은 줄어들 것이다. 거액이 들어간 담수화시설이 아까워도 하는 수 없다. 정 아깝다면, 거대한 시설을 나누어 갈수기마다 식수 걱정에 시달려야 하는 도서지방에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미친 짓은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 환경연구소 소장)
(출처-2014년 12월 15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댐을 폭파하라
신동호 논설위원
명백한 잘못을 저지르고도 책임지지 않을 방법이 있다. 잘못이 아니라고 끝까지 우기면 된다. 단 절대로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거짓말도 백번 반복하면 참말이 된다’는 믿음을 가질 것. 그런 경지에 이르면 반대자와 비판자를 무력화하기는 더 쉽다. 잘못을 끝까지 성취해 돌이킬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단 잘못이 매우 커야 한다. 설사 잘못이 만천하에 드러나더라도 되돌리기 어려울 정도로 말이다.
영주댐을 보면서 해본 생각이다. 지난 11일 환경운동연합이 하천지형학 권위자인 맷 콘돌프 미국 버클리대 교수와 함께 내성천을 답사하는 일정에 참여했다. 영주댐은 4대강 사업이 진행 중이던 2009년 급히 착공해 1조원 넘게 들여 지은 높이 55.5m의 대형 콘크리트댐이다. 이미 공사가 끝난 듯 현장 가림막을 걷어낸 채 거대한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댐의 역사와 현재, 강의 미래를 다룬 영화 <댐네이션>은 1935년 플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후버댐에서 연설하는 목소리로 시작된다. “왔노라, 보았노라, 압도됐노라!” 나 역시 정반대 이유이긴 하지만 마찬가지로 ‘압도당하고’ 말았다. 영주댐은 서울 여의도의 3배가 넘는 면적(10.4㎢)을 수장하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수몰되는 도로와 철도를 이설하느라 산 곳곳을 흉측하게 잘라낸 모습은 또 다른 충격이었다. 댐에서 약 13㎞ 상류에는 유사조절지라는 또 하나의 댐을 짓고 있다. 본 댐에 모래가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공사 안내판에는 높이 8.5~16.8m 콘크리트식 고정보라고 소개하고 있다.
국내 댐 건설 사상 최초라는 유사조절지 설치는 내성천의 특징을 잘 말해주는 시설이다. 내성천은 모래강이다. 낙동강 모래의 절반을 차지하고 해운대를 비롯한 부산·울산 해안 모래의 주된 공급처이기도 하다. 경북 봉화 선달산에서 발원해 삼강 합수부에서 낙동강과 만나기까지 100여㎞를 오로지 모래만 밟으며 걸을 수 있는 강은 세계적으로 흔치 않다고 한다. 내성천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해야 한다거나 유네스코 자연유산에 추천하는 이유가 바로 모래강인 데 있다는 얘기다.
이상한 것은 모래강에 댐을 건설하는 목적이다. 댐으로 인해 모래 흐름이 차단된다면 내성천의 고유한 특징은 잃게 된다. 이미 내성천 곳곳에서 모래 위에 풀이 자라는 육화현상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회룡포에서는 굴착기를 동원해 모래밭에서 풀을 제거하고 있었다. 무섬마을과 우래교 등 많은 곳에서 모래가 대거 유실되는 역행침식이 일어났다고 한다. 모래가 깎여나가고 자갈이 드러난 곳도 쉽게 눈에 띄었다. 아직 담수도 하지 않았는데 강이 크게 변화하고 있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생태계의 변화는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지난 5월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던 <댐네이션>은 지난 4일 국회에서도 상영됐다. ‘흐르는 강을 위한 의원 모임’ 발족식 상영작으로서였다. 세계적으로 댐 건설 시대가 끝나고 강 복원이 대세라는 건 더 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영화를 다시 보면서 눈길을 끈 것이 글렌캐니언댐이다. 국립공원 그랜드캐니언의 콜로라도강 수질과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철거 논의 중인 댐이다. 환경운동가의 격렬한 반대를 뚫고 1963년 건설된 글렌캐니언댐은 후버댐과 맞먹는 220m 높이의 초대형 댐이다. 지구의 벗 창시자이기도 한 환경운동가 에드워드 애비가 1981년 이 댐에 대형 플래카드를 내걸고 첫 시위를 벌이면서 이렇게 외친다. “정치적 항의 운동이 실패로 돌아가면 댐을 직접 부술 겁니다.”
마멋댐과 콘디트댐 등이 폭파해체되는 장면 못지않게 인상적인 것은 미국 환경운동의 역동성이다. 에드워드 애비의 뒤를 이은 활동가들이 헤츠헤치댐과 글라인스캐니언댐 벽에다 페인트로 거대한 균열을 그리고 마틸리하댐에 대형 가위 그림과 절단선을 만드는 시위를 벌이는 모습 등은 놀라운 메시지와 영감을 선사한다. 페놉스코트강복원기금이라는 단체는 전력회사로부터 댐 3개를 사서 철거 여부를 고민할 정도다.
우리는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국립공원급’ ‘세계자연유산급’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모래강 내성천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국토교통부와 한국수자원공사의 말을 믿고 영주댐 담수를 지켜볼 것인가. 믿지 않지만 이왕 지은 댐이니 활용 방안을 찾아보자거나 어쩔 수 없다며 눈감을 것인가. 거짓말은 거짓말일 뿐이고 세상에 돌이킬 수 없는 것은 없다고 외칠 용기가 없는가. 어느 환경학계 원로 교수가 노래로 대답한다. “영주댐 폭파!~”
(출처-2014년 12월 16일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