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 불공에 꽂히다
법인 스님
얼마 전부터 나는 청소하는 재미에 흠뻑 빠져있다.
정성스럽게 마당을 쓸고 방을 닦노라면 몸은 더없이 홀가분하고 마음은 쾌청하다. 두 시간 이상을 쓸고 닦아도 힘들 줄을 모른다. 오히려 몸에 청신한 기운마저 솟는다. 이제 청소는 내게 불공이고 참선이 되었다.
청소불공을 하면서 얻은 게 적지 않다. 게으르고 미루는 묵은 습성을 조금이나마 고쳐가고 있고, 무엇보다도 몸을 쓰는 즐거움을 알았다. 힘들거나 짜증나지 않고 지루함을 느끼지 못하는 비결도 나름 체득했다. 그 비결은 '그저 하는 것'이다. 청소하면서 귀찮다거나, 빨리 끝내야 한다거나, 하기 싫은 일이라는 생각을 두지 않는다. 그저 정성스럽게 느긋하게 무심하게 할 뿐이다.
거기에다 염불과 진언을 염송하니 청소하는 그 자리가 바로 선방이고 염불당이다. 나는 청소불공을 통해서 목표에 집착하지 않고 과정에 전념하고, 유위(有爲)에서 무위(無爲)를 익히고, 몸을 움직여 정신을 깨우는 이치를 조금이나마 깨치는 소득을 얻는다.
*걸레질하는 장그래. tvN 드라마 <미생> 중에서
내가 청소불공에 꽂힌 데는 어떤 계기가 있다.
그것은 수행과 사회적 실천운동을 하나로 일치 시킨 비노바 바베에게 받은 소박하고 경건한 감동 때문이다. 비노바는 인도의 최상 계급인 브라만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처소를 청소하는 일과 더불어 당시 불가촉천민들이 직업으로 하는 분뇨 치우는 일을 날마다 하면서도 그 일을 일종의 기도와 같이 대하였다. 많은 이들이 가장 더럽다고 혐오하는 분뇨를 치우면서도 청정한 모습으로 피어난 비노바, 세상 사람들이 가장 천하고 낮다고 하는 멸시하는 최하층 계급인 하리잔들 속에서 가장 고결한 삶을 살아온 비노바 바베는 누구인가?
인도는 크고, 높고, 깊고, 넓은, 나라이다. 하늘과 땅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이 그렇다.
저 히말라야에서 발원한 지혜의 빛과 물은 베다를 거쳐 우파니샤드를 낳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출현을 맞이하여 '축(軸)의 시대'를 열었다. 그런데 그런 인류문명의 위대한 주축을 이룬 인도는 지금까지도 계급차별의 갈등과 고통을 겪고 있다.
고대부터 사제 계급인 브라만이 신분사회의 최정점에 있고 정치적 지배계급인 크샤트리야가 있다. 그 다음 계급으로 생산을 담당하는 바이샤와 노예인 수드라가 있다. 더욱 경악할 일은 노예계급인 수드라에도 못 미치는 계급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불가촉천민이다. 이들과는 접촉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눈길도 마주하지 않고 말도 나누지 않고 밥도 함께 먹지 말라는 것이다.
간디가 신의 자녀란 뜻으로 부른 하리잔들은 가죽무두질, 사람과 가축의 분뇨 치우는 일들을 담당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한 평의 논과 밭도 없다. 사회구조적으로 희망이 없는 삶이다. 하리잔들은 그저 그렇게 태어난 운명을 저주하고 희망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실로 엄청나고 어이없는 모순이 아닌가? 정신문명의 최고봉을 이룬 인도, 무지와 욕망을 벗어나 영원한 자유인 해탈의 경지를 추구하며 명상수행이 발달한 인도가, 2천여 년 동안 인간이 인간을 억압하고 고통으로 몰아넣는 무지한 관습을 유지하고 있었다니.
다행스러운 것은 1955년 인도는 공식적으로 불가촉천민에 대한 부당한 차별을 법으로 금지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전까지, 지금도 하리잔들이 겪었을, 겪고 있는 고통을 생각해 보자. '무시'야말로 배고픔과 더불어 최고의 설움이고 고통이다. 정중한 대우는 받지는 못할망정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인정조차 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그들은 어디에서 희망을 찾아야 하는 것일까?
*비노바 바베
근대에 이르러 하리잔들의 고통과 절규와 호소에 답하는 이들이 있었다. 마하트마 간디, 암베드카르, 네루, 비노바 바베가 계급의 차별을 부정하고 평등과 상생의 길을 만들었다. 인도는 훌륭한 사상과 종교적 수행과 지향을 낳은 훌륭한 전통을 배반하고 계급과 여성차별의 역사적 모순을 만들었다. 그러나 동시에 근대의 위대한 인물을 낳았다. 간디, 암베트카르, 네루, 비노바 등 근대 인도사회가 낳은 이들은 자기의 삶과 정치와 사회적 실천을 하나로 꿰어 온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이 중에서 비노바 바베는 불가촉천민에게 새 삶의 희망을 준 성자이고 사회운동가로서 모두의 가슴을 울린 인물이다. 비노바에게 특별히 관심을 갖고 가슴을 열어 손을 잡은 까닭은 '나의 길'을 새로이 정립하기 위해서이다.
이제 3년 후에 출가수행 40년을 맞는다. 세월의 나이테를 응시하며 나는 묻고 생각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리고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있는가? 자기 수행과 이웃을 위한 보살의 길은 의외로 단순했다. 답은 멀리 있지 않았다. 진실하고 자애로우며 무엇보다도 '나부터'의 실천이 중요하다. 비노바가 그렇게 살았고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마치 석가모니 부처님이 제왕의 권위와 법령 없이도, 군대의 무기와 벌칙을 빌리지 않고서도 깊고 큰 정신과 이웃과 함께한 대자대비의 실천으로 제자들이 귀의했듯이 말이다.
그리고 나는 거듭 묻는다.
우리는 대승불교를 말하면서도 왜 역사적 인물로서 보살이 많지 않는가. 나는 늘 이것이 의문이다. 그 많은 대승경전은 자애와 헌신의 길을 갈 수 있도록 공성(空性)과 연기(緣起)와 중도(中道)의 깊고 풍부한 철학과 실천방법을 제시하고 있는데도 왜 이리 이웃에 대한 눈길과 손길은 희미한지 생각해본다. 그래서 나는 오랜 과거와 경전에서가 아닌, 얼마 전에, 또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삶에서 자기수행과 사회적 실천을 일치한 보살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평전과 자서전을 즐겨 읽는다. 오늘의 보살을 찾아가는 그 순례길에서 비노바 바베를 만난 것이다.
비노바 바베는 현대 인도의 위대한 정신적 지도자이자 사회개혁가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의 활동과 인격적 모범은 인도의 역대 수상부터 가난한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도인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1895년에 태어난 그는 열 살의 어린 나이에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며 인류를 위해 헌신하기로 서약하였다. 영적인 진리와 실천적 행동을 구체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삶의 길을 찾던 중 간디를 만났고, 인도를 갱생시키기 위한 간디의 활동에 합류하였다.
1940년에 간디는 '비폭력저항운동(사티야그리하)'을 이끌 최고의 지도자로 비노바를 지목하였다. 인도가 독립을 얻자 비노바는 전대미문의 '부단운동(토지헌납운동)'을 시작하였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인도 전역을 걸어 다니며 지주들을 만났고, 가난한 이웃들에게 땅을 내어 주도록 설득하여, 스코틀랜드만 한 거대한 토지를 헌납 받았다. 비노바는 평생 동안 인도의 정신적 전승에 관한 연구는 물론, 세계의 큰 종교들의 거룩한 전승에 대한 연구에 정진하였고, 그의 사회적 활동은 그러한 연구에 기초한 것이었다.
비노바의 평전을 집필한 칼린디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흔들림 없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비폭력을 실천하고, 영성을 추구하며, 간직해온 사랑의 힘으로 내적인 삶과 외적인 삶을 두루 살았노라고. 이 책에서 나는 자기 자신에게 철저한 삶을 살면서도 사회의 모순과 억압을 지혜와 사랑의 혁명으로 걷어낸 비노바의 삶을 읽었다. 그의 삶은 얼마 전의 현재였다는 사실이 가슴 뛰게 만들었다. 지금 현재 나의 실존이 그와 마주하면서 정신 줄을 바짝 세우게 한다. 새삼 대승보살수행자의 길을 그려본다. 지혜와 자비, 비움과 나눔으로 개인과 사회를 껴안고 수레의 두 바퀴로 중생역사의 한복판을 횡단하는 대승보살의 길이 보였다. 이렇게 비노바는 내게 실감으로 다가왔다.
비노바 바베 평전의 부제는 '명상과 혁명'이다. 명상과 혁명이라니, 실로 눈이 크게 열리는 새벽 죽비 소리 아닌가.
법인 스님
16세인 중학교 3학년 때 광주 향림사에서 천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대흥사 수련원장을 맡아 '새벽숲길'이라는 주말 수련회를 시작하면서 오늘날 템플스테이의 기반을 마련했다. 실상사 화엄학림 학장과 <불교신문> 주필, 조계종 교육부장을 지냈으며, 전남 땅끝 해남 일지암 암주로 있다.
이메일 : abcd3698@hanmail.net
(출처-2014년 12월 22일 <한겨레> "휴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