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기 전에 이 세계를 구해야 한다
제인 구달의 우아한 과학 이야기
(출처-2014년 11월 27일 <한겨레> 안창현 기자blue@hani.co.kr)

탄자니아의 곰비에서 와하 부족의 전통 치유자를 만나, 그가 기르는 약용식물을 함께 살펴보는 제인 구달.
사이언스북스 제공
식물의 지혜에서 희망을 찾다
희망의 씨앗
제인 구달·게일 허드슨 지음
홍승효·장현주 옮김
사이언스북스·1만9500원
제인 구달(1934~)이 식물 이야기를 갖고 우리를 찾아왔다. 그는 50여년 전 침팬지 연구를 통해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한 차원 높였고, 올해 80살의 노령에도 자연과 인간의 교감의 길을 널리 알리고 있다. 환경운동과 동식물 보호운동 활동가들의 '대모'이자, '희망'이라는 낱말이 들어간 여러 책의 저술가이기도 하다.
책은 멸종 위기에 놓인 여러 동물들과 이를 보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데 모은 <희망의 자연>의 자매편이다. 원래 <희망의 자연>의 일부로 쓰려 했으나, 2년 동안의 준비 끝에 식물 이야기를 묶은 책으로 독립한 것이라 한다. 원서는 지난해 8월 출간됐다. 식물학 전공자의 강의가 아니라, 할머니가 손주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삶의 지혜를 얘기해 주는 것에 가깝다.
이 책은 먼저 과학책이다. 오직 시험 점수를 위해 고교에서 생물을 공부했던 사람한테, 그는 식물학의 흥미로운 세계를 친절하게 안내한다. 광합성을 "이산화탄소 1컵에 물 몇 수저, 햇볕 한 줄기를 섞기. 모든 식물의 삶을 지탱하는 음식의 궁극적이며 유일한 조리법"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우아한 설명도 가능하다.
그리고 나무가 3억8500만년 전 지구에 처음 등장했다는 것을 비롯해, 여러 식물학자들의 열정적 식물 사랑, 2000년 만에 발아한 씨앗 이야기 등이 굽이굽이 이어진다. 식물이란 놈들이 얼마나 신기하고 복잡하고 아름다운 존재인지 더듬어 가는 것이다. 인류와 식물의 관계가 뒤틀어지는 장면도 조명한다. 온갖 중독을 낳고 있는 마약, 술, 담배는 모두 식물로 만든 것으로 인간이 식물을 착취한 결과이다. 대농장과 노예무역은 식물을 매개로 한 인류의 범죄였고, 지금도 일부 이어지고 있다.
여기까지라고 하면, 과학교양서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런데 제인 할머니는 몇 걸음 더 들어간다. 나무가 나이와 참을성 덕분에 오래전부터 존경과 숭배를 받아왔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어쩌면 우리가 나무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했다. 식물의 치유력으로부터 도움을 얻었던 주술사의 지혜를 말하는 대목 등에 이르러선 영적 세계의 문턱 앞까지 안내받은 셈이다.
아무리 고상한 척해도 인류는 어차피 식물(식량)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다. 그래서 화학비료와 제초제 등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제인 할머니는 이것들의 불편한 진실 앞에서 고개를 돌리지 말라고 한다. 특히 유전자변형농작물(GMO)과 관련해 몬샌토 등 대기업의 음모와 어리석음을 낱낱이 고발한다. 유전자변형농작물은 '슈퍼 벌레'와 '슈퍼 잡초'를 만들고, 동물과 인간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이 제초제(DDT)를 고발했던 일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나날이 망가지는 지구의 식물들. 과연 희망은 없는가. 제인 할머니는 "한 줄기 희망이 있다"고 강조한다. 유기농과 지속가능한 농업에 대한 갖가지 실험이 성공하고 있음을 보여주면서 "변화의 기운이 감돈다"고 한다. 도시 밭에서 자신이 먹을 채소를 기르고, 수확한 작물을 이웃과 나누면서, 잃어버린 식물 세계와 교감을 회복하고 있다고도 했다.
우리가 만드는 희망도 있지만, 자연이 주는 희망도 있다. 제인 할머니는 책의 마지막에 원자폭탄에서 살아남은 일본의 나무 세그루와 뉴욕 9·11 테러 현장에서 무너진 건물 아래 찢긴 채 발견된 돌배나무가 되살아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연의 놀라운 회복력을 일깨우는 산증인들이다.
제인 할머니는 머리말 마지막에 이렇게 썼다. "그리하여 우리가 식물에게 지고 있는 막대한 빚을 인정하고 그들 세계의 아름다움과 신비, 복잡성을 기리기 위해 이 책을 썼다. 너무 늦기 전에 우리는 이 세계를 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