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재처리 공장’ 22번 완공 연기한 이유
(출처-2014년 11월 22일 <시사인> [375호] 42, 43면)
한국이나 일본이나 ‘사용후 핵연료’는 골칫거리다. 한국 정부는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로 이 문제를 풀려 하고 있다. 일본의 고노 다로 의원이 한국과 일본에서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추방하자’는 서신을 보내왔다.
고노 다로 (일본 중의원 의원) | webmaster@sisain.co.kr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문제가 한국과 미국 사이의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원자로에 넣어 전기를 생산하는 핵연료에는 농축우라늄 등이 있다. 핵연료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원자로에서 꺼내 새로운 연료로 대체해야 한다. 이렇게 끄집어낸 ‘사용후 핵연료’가 문제다. 위험하기 그지없는 방사성 물질이다. 한국의 경우, 원자력발전소 내의 저장 공간에만 보관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현재 확보된 저장 공간은 2017년이면 포화상태에 이른다.
‘사용후 핵연료’를 가공해서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재처리’ 방법도 있다. ‘사용후 핵연료’의 상당 부분을 다시 사용할 수 있으므로 ‘보관해야 하는 양’은 줄어든다. 다만 재처리로 추출한 플루토늄 등을 핵무기 개발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다른 나라들의 재처리 능력을 국제법(협정)으로 억제하고 있다. 한국도 ‘한·미 원자력 협정’에 따라 사용후 핵연료의 재처리가 금지되어 있다.
한국 정부는 2013년부터 미국에 협정 개정을 통한 재처리 허용을 요구해왔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미국이 사전 동의하는 경우에 한해 ‘사용후 핵연료의 재처리’가 장기 허용되는 방안이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일본 ‘반원전 운동(원전 제로 모임)’의 주역 중 하나인 고노 다로 중의원 의원(자민당)이 ‘한국과 일본에서 사용후 핵연료의 재처리를 추방하자’는 내용의 서신을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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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롯카쇼무라에 있는 ‘원자연료 재활용시설단지’.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이후 3년8개월 정도가 흘렀다. 당시 보내주신 지원과 따뜻한 마음에 감사드린다. 이와 함께 터진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한국의 여러분께 많은 걱정을 끼쳐드린 것도 죄송하다.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일본에서도 앞으로 원자력발전소를 어떻게 해야 할지, 무수한 논의가 진행되어왔다. 그러나 결론이 나오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독일의 경우, 체르노빌 사고 이후 원자력발전을 중단하기까지 30여 년이 걸렸다.
그러나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에 대한 사회적 논의에서는 조금씩 합의가 이뤄지는 것 같다. 당초 일본의 원자력 정책은 ‘재처리’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해서 플루토늄을 추출한 뒤 이것을 다시 고속증식로(플루토늄을 주 연료로 하는 원자로)에 넣어 에너지를 생산하자는 것이다. 더욱이 고속증식로에서는, 연료로 사용된 플루토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플루토늄으로 증식된다. 그래서 고속증식로는 ‘꿈의 원자로’라고 불리기도 했다.
일본 역시 미국과의 원자력 협정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오랜 세월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할 수 없었다. ‘미·일 원자력 협정’이 일본의 재처리를 허용하는 쪽으로 개정된 것은 1968년이다. 다만 ‘어떻게?’라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일본이 실제로 국내 재처리 시설을 가동할 수 있게 된 것은, 9년 뒤인 1977년 9월12일의 ‘일·미 합의’ 이후다. 당시 일본의 원자력 관계자들은 ‘교섭을 통해 재처리권(權)을 쟁취했다’며 한껏 들떠 있었다. 그러나 이 ‘권리(?) 쟁취’의 결과는 무참하기 짝이 없었다.
고노 다로 의원(위)은 6선 의원으로 일본의 ‘반원전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의 원자력발전소들은, 해당 지역에서 나오는 ‘사용후 핵연료’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왔다. 아오모리 현 롯카쇼무라에 위치한 재처리 공장으로 모든 ‘핵 쓰레기’를 옮기면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롯카쇼무라 재처리 공장은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지금까지도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있다. 지난 9월에도 일본원연(日本原燃:사용후 핵연료의 상업적 이용을 위해 설립된 국책 기업)은 ‘2014년 10월까지 롯카쇼무라의 재처리 공장을 완공하겠다’고 호언장담해왔다. 그러나 지난 10월30일 완공 시기를 2016년 3월로 다시 미뤘다. 일본원연의 완공 연기는 이번으로 22번째다.
그동안 일본 각지의 원자력발전소들은 원전에서 꺼낸 사용후 핵연료를 롯카쇼무라의 저장소로 보내왔다. 이 저장소는 거의 포화상태다. 만약 롯카쇼무라 재처리 공장의 완공이 계속 지체된다면, 일본의 원전 대다수는 사용후 핵연료를 보낼 장소가 없어서 몇 년 내로 가동을 멈추게 될 것이다.
만약 롯카쇼무라의 재처리 공장이 2016년부터 가동된다면, 사용후 핵연료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게 되므로 그 저장 규모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추출된 플루토늄이 쌓이게 되는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물론 이 플루토늄을 고속증식로에 넣어서 에너지를 생산한다는 것이 당초 계획이었다. 그러나 일본이 개발을 호언장담했던 고속증식로의 경우, 2조 엔 이상의 비용과 50여 년의 기간을 투자했는데도 아직 실용화될 전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전문가들까지도 상업용 증식로 개발은 불가능하다고 인정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그동안 일본은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온 ‘사용후 핵연료’의 재처리를 영국·프랑스 등에 맡겨왔다. 그 나라들에서 재처리를 통해 추출한 플루토늄을 받아서 (개발 예정이었던) 고속증식로에 연료로 투입할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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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일본 아오모리 현에 있는 ‘사용후 핵연료 중간저장시설’ 대표(위)가 폐연료봉
보관 장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재처리’, 동북아 핵개발 경쟁으로 이어질 수도
이후 일본으로 들어올 플루토늄이 무려 47t에 이른다. 미국의 모든 핵병기에 탑재된 플루토늄의 총량인 38t을 훌쩍 넘는 규모다. 그런데 이를 집어넣을 고속증식로의 개발은 불투명하다. 그래서 플루토늄 47t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일본에서는 심각한 고민이 계속되고 있다. 이 정도 규모의 플루토늄을 고속증식로 없이 안전하고 경제적으로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정작 고속증식로의 개발은 암초에 부딪혀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우리(‘원전 제로 모임’ 등 일본의 원전 비판자들)는 지금, 이런 어리석은 계획을 중단시키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한국도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하기 위해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하려 노력 중이다. 한국 정부가 ‘재처리 허용’을 요청하는 이유 중 하나가 사용후 핵연료의 저장 공간이 곧 포화상태에 이르기 때문이라는 것도 이해한다.
그러나 재처리는 경제적 합리성이 없을 뿐 아니라 방사성 폐기물의 처리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는 사실 역시 한국인 여러분이 알아주셨으면 한다. 일본도 ‘재처리를 통한 핵연료 선순환(기존 원전에서 사용한 핵연료에서 추출한 플루토늄을 다시 고속증식로에 투입해 에너지를 생산하는)’으로 장밋빛 미래를 꿈꾸다가 지금의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다.
나는 일본이 일단 재처리를 중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을 비롯해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사용후 핵연료가 안고 있는 문제는, 현재로서는 세계의 어떤 나라도 쉽게 해결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사용후 핵연료’는 재처리가 아니라 세계적으로 안정성을 인정받은 저장 방식(예컨대 ‘드라이캐스크’ 등)으로, 새로운 기술이 개발될 때까지(상당히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안전하게 보관하는 것이 최선이다. 또한 동북아시아가 핵개발 경쟁에 말려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재처리는 중단되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한국과 일본이 함께 리더십을 발휘한다면 동북아시아에서 사용후 핵연료의 재처리를 추방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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