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가 가톨릭을 대신하는 종교"
브라질 해방신학자 성정모 교수
강한 기자 | fertix@catholicnews.co.kr
(출처-2014년 10월 20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한국 출신 해방신학자 성정모 교수(브라질 상파울루 감리교대학교 종교학과)가 해방신학의 본고장인 라틴아메리카에서도 해방신학은 ‘위기’라고 진단했다.
▲ 성정모 교수 ⓒ강한 기자
성 교수는 18일 오후 서울에서 열린 특강에서 이처럼 말하며, 그 두 가지 근거로 해방신학계에서 새로운 신학적 작업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과 함께, 훌륭한 저작이 나오더라도 영어권 출판계에서 번역 출간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성 교수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가톨릭 신학이 근현대 세계를 ‘무신론이 판치는 세상’으로 간주하고, 사람들에게 신의 존재를 납득시키는 것을 사명으로 삼아 왔다고 요약했다. 이와 달리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늘날 세상을 ‘우상을 섬기는 세상’으로 보고 있으며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사회적 불평등과 소외’라고 본다고 성 교수는 말했다.
성 교수는 교황의 생각은 해방신학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며, “해방신학은 이처럼 좋은 열매를 많이 맺은 신학이었다. 우리가 다시 한번 해방신학이 어떤 것인지 공부해보는 시도는 유효하다”고 말했다.
그는 해방신학자들이 ‘자본주의가 경제제도를 넘어서 종교를 이루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옛날에는 돈을 많이 벌면 그 돈을 갖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서는 1000만 달러를 가진 사람이 1억 달러를 갖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은 한계가 있는 구체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돈을 통해 ‘무한한 것’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 무한한 존재가 바로 ‘신’이 아니겠습니까?”
그는 “아이폰5를 갖고 있는 사람이 왜 아이폰6를 사고 싶어 할까” 물으면서, 그게 바로 ‘자본주의의 비밀’이며 상품은 ‘무한한 존재를 향한 약속’이라고 말했다.
“가톨릭 신자들은 성체를 받을 때 ‘빵’을 받는 게 아닙니다. 그 ‘빵’ 뒤에 있는 ‘약속’을 받아 먹습니다. 이 성체 신앙처럼 마케팅의 신학자들은 상품의 신비로운 차원에 대해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의 종교가 아니겠습니까?”
성 교수는 오늘날 자본주의가 ‘진정한 보편적(가톨릭) 교회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에 사람들은 자신이 연약하다고 느끼거나 죄를 지었다고 느낄 때 교회 등 거룩한 곳을 찾아갔지만, 오늘날에는 그 대신 쇼핑을 하며 쇼핑몰이 성전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성 교수는 “성서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신이 존재하느냐’가 아니며 ‘누가 진정한 신이냐’ 하는 질문”이라면서, 이것이 교회가 당면한 가장 큰 과제라고 강조했다. 또한 ‘자본주의의 영성’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성정모 교수는 “우리가 고통받는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것이 바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매달리셨던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라며 “이것이 복음과 해방신학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이날 특강은 ‘왜 다시 해방신학인가’를 주제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와 우리신학연구소가 함께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었다.
성정모 교수가 ‘해방신학과 돈에 대한 우상 숭배’를 주제로 기조강연을 한 데 이어, 평신도 신학자 김근수 씨가 ‘프란치스코 교황과 해방신학’을, 김항섭 한신대 교수가 ‘물신숭배는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주제로 강연했다.
자본주의 욕망 다스리는 법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출처-2014년 10월 20일 <한겨레> "휴심정")
‘2세대 남미 해방신학의 거목’이자 현존 선구자로 불리는 브라질 상파울루감신대 법인문대학장인 성정모(57·사진) 교수가 <시장·종교·욕망>(서해문집 펴냄·홍인식 옮김) 출간을 계기로 방한했다.
7살 때 이민 간 부모를 따라간 성 교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해방신학자 우구 아스망과 프란츠 힝켈라메르트의 제자다. 브라질 사람인 우고 아스망과 독일 출신으로 남미 코스타리카에서 산 힝켈라메르트는 공동 저작을 통해 신을 대신한 ‘돈의 우상화’를 비판했고, 이들의 영향을 받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규제받지 않은 자본주의는 독재’라고 규정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사상에도 영향 끼친
남미 해방신학 거목들 잇는 수제자
브라질 빈민촌 등 현장 찾는 실천가
‘시장·종교·욕망’ 출간 맞춰 국내 강연
“세월호는 허술한 공공감시의 증명”
성 교수가 해방신학자들 중에서도 독특한 것은 부의 독점과 빈곤, 전쟁 등의 인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르크시즘처럼 구조 변화만을 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사랑과 용서, 화해라는 기독교적 가치가 체화된 영성가적 면모를 보이고 있다. 특히 그는 인간이 욕망과 무의식의 허점을 파고든 신자유주의에 맞서기 위해선 욕망과 무의식까지 다스릴 수 있는 복음과 믿음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 주목받고 있다.
그는 신학자이면서도 빈민지역 등 현장 사목을 병행하는 실천가다. 가톨릭신자인 그는 실제 브라질 최대 빈민촌인 자르징안젤라시의 산마르티네스 교회 등 빈민사목 현장에서 해방신학 모임을 이끌고 있고, 상파울루의 떠오르는 별인 이바브침례교회 키비츠 목사 등 많은 목회자들에게 해방신학을 가르친 사부이기도 하다.
그의 한국행엔 역시 한인1.5세인 재남미 교포 홍인식 목사(57)가 동행하고 있다. 17살 때 어머니를 따라 남미 과테말라로 이민을 가 아르헨티나연합신학대에서 대표적인 해방신학자 중 한명인 호세 미게스 보니노(1924~2012)에게 해방신학을 배우고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한인교회 목회를 했고, 한때 서울 강남구 삼성동 현대교회에서 목회했으며, 현재 멕시코장신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성 교수와 동갑네기 해방신학자인 홍 목사는 성 교수에 대해 "나는 성교수의 신발끈을 매기에 적당하다"며 성 교수의 통역을 자처할 만큼 성 교수는 남미에서 인정받는 학자다.
지난 16일 서울 종로5가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성 교수를 만났다. 그에게 먼저 “‘세월호 사건’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고 물었다.
“많은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공공의 감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 얼마나 큰 참사가 생길 수 있는지 증명한 사건이다. 신자유주의란 정부나 공공기관의 규제하려는 시도를 그만두고 시장에만 맡겨두라는 것이다. 기업들이 자유롭게 경쟁하도록 내버려두는 게 최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결과가 세월호 참사다.”
성 교수는 ‘우익 단체들이 피해자 가족들에게 모욕을 주고 공격하는 것’과 관련해 “보통 사람들은 잘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세월호 사건 자체가 신자유주의 체제의 문제점을 드러내기에 이를 봉쇄하려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런 참사를 계기로 공공의 힘으로 무제한적인 욕망을 규제하게 될 것을 막기 위해 이들이 ‘욕망’편의 선봉장으로 전면에 나서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성 교수의 전매특허는 ‘욕망론’이다. 그는 “욕망은 본능이어서 그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금은 욕망시대다.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는 욕망을 쟁취하는 데 정당성을 부여해주고 있다. 욕망을 쟁취해낸 이들이 삶의 모델이 되고, 멘토로 떠오른다. 그로 인한 경쟁과 스트레스, 빈부 격차, 집단 갈등 등 수많은 문제가 양산되고 있지만, 너 나 할 것 없이 그 블랙홀에 빨려들어가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인간에게 왜 자유가 필요한가. 어떤 유형의 삶을 살 것인가 선택하기 위해서다. 그 선택을 위해 삶의 모델이 중요한데, 자본주의는 부자를 삶의 모델로 강요한다. 부자들은 이미 신을 대체해 우상이 된 스타들과 제품을 일치화하는 광고를 내보낸다. 그러면 자유를 잃어버리고 우파 좌파 할 것 없이 그 멋진 스타가 타는 멋진 차를 갖고 싶고 타고 싶다는 욕망에 빠져들게 된다.”
성 교수는 욕망은 내가 남보다 더 앞서고 부자가 되고 더 쟁취하려는 이기주의의 표출이라고 했다. 따라서 “욕망의 조절은 이기주의와 싸움이기에 자신을 헌신한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는 또 좀더 현실적으로 욕망을 부추기는 사회적 압력을 견뎌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을 ‘서로간의 연대’라고 강조했다.
“예수가 제자들을 파송할 때 한명씩이 아니라 꼭 둘씩 짝을 지워 내보냈다. 한명씩 보내면 더 많은 곳에 보낼 수 있는데 왜 그렇게 했겠는가. 서로 영향을 줄 수 있어야 연대를 통해 압력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세 앞에서 우리 민족은 연대하기보다는 서로 총칼로 죽인 전쟁을 치르고도 60년 넘게 대립해왔다. 이에 대해 성 교수는 “제국주의가 우리의 무의식 안에 심어준 공포감 때문에 남한은 자본주의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북한 공산당을 희생제물로 사용했고, 북한도 마찬가지”라며 “그 과정에서 민족 내 적대감과 상처가 깊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공포에 질리면, 두려움 속에서는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받아들이기보다는 자기의 주장을 더욱 강화시키고, 내부로 점점 폐쇄적이 된다. 교리적으로도 자기 입장만을 더욱 강화해 교조적이 되고 만다. 이들은 복수로 문제를 해결하려 해 사람들을 천국이 아닌 지옥에 보다 많은 이들을 보내려고 한다.”
성 교수는 “복수하려는 욕망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설사 정치적 통일을 이룬다 해도 그런 상처 치유와 화해가 없다면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일 뿐이란 것이다. 그는 이 과정에서 기독교인의 믿음과 신학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조했다.
“독재권력자 같은 신이 아니라 예수에 의해 계시된 신을 선포해야 한다. ‘사랑의 신’ 말이다. 그 신은 우리를 화해의 사절로 삼았다. 그리고 용서했다. 그것이 바로 ‘기쁜 소식’(복음)이다. 그러니 공포보다는 책임감을 갖고 나아가는 것이다. 믿음이란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이나 교리를 수용하는 것만이 아니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용기다. 예수에게 계시된 화해의 길을 가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성 교수는 ‘20일 오후1시 서울 장신대, 오후 4시 기독교회관, 21일 오후 1~4시 서울 감신대, 22일 오전 11시30분~낮 12시30분 서울 한신대, 23일 오전 9시 광주 호남신학대, 오후 3시 광주가톨릭대, 24일 오후 1~3시 성공회대’에서 강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