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된 여성성… 결국 ‘나’는 사라졌다
(출처-2014년 9월 20일 <경향신문>
임아영 기자 layknt@kyunghyang.com)
▲ 내 안의 여성 콤플렉스7…여성을 위한 모임 지음
| 휴머니스트 | 292쪽 | 1만6000원
2014년, 아직도 여성에게 ‘여성 콤플렉스’가 있을까. 성평등은 이미 실현된 것처럼 보인다. 알파걸, 여풍 등의 용어는 남성들에 대한 역차별을 사회 제도로 보완해야 한다는 논리로 쓰인다. 실제 지난 50여년 동안 여성의 권리는 눈부시게 성장했다. 하버마스는 여성운동에 대해 “오늘날 가장 강력한 사회운동이며 성에 따른 관계를 변화시키면서 사회의 가장 기초적인 제도인 가족과 사회화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평하기도 했다.
과연 그럴까. 한국의 고학력 여성 취업률은 60.1%로 남성(89.1%)과 29%의 격차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치다. 남녀 간 임금격차도 37.5%로 가장 높다. OECD 회원국의 남녀 간 임금격차 평균은 15%이며 30%를 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언론에 자주 나오는 이런 수치들만 봐도 불평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 책은 수치들을 넘어서 실제 여성들의 삶의 풍경을 들여다본다. 거기에는 변형된 콤플렉스가 넘실거린다. 바로 착한 여자 콤플렉스, 신데렐라 콤플렉스, 외모 콤플렉스, 지적 콤플렉스, 성 콤플렉스, 엄마딸 콤플렉스, 슈퍼우먼 콤플렉스다.
1990년 결성된 숙명여대의 여성학 연구 모임인 ‘여성을 위한 모임’은 1992년 <일곱가지 여성 콤플렉스>를 펴내 위 7가지의 콤플렉스를 분석했고 20여년이 지난 지금 다시 통계와 설문, 인터뷰 등을 통해 이 콤플렉스들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펴봤다. 연구 결과 콤플렉스는 20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단지 변형되거나 왜곡되었을 뿐이다. 어쩌면 더 악화되었다.
■ 콤플렉스는 단지 변형되었을 뿐
오늘날 젊고 똑똑한 여성들은 여성운동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의 미래는 앞서 간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길을 개척하며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신자유주의 시대 무한 경쟁에 시달리며 자기 계발론 속에서 전략적으로 여성성을 이용한다. 저자들은 “20년 전 여성들의 콤플렉스가 여성성이라는 억압과 굴레에서 비롯되었다면, 오늘날 여성성은 전략적 필요에 따라 변했다”고 말한다. 책은 이렇게 달라진 심리적 특성을 ‘위장된 여성성’이라고 정의한다.
젊은 여성들은 더 이상 착한 여자가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착한 여자로 위장한다. 착한 여자처럼 구는 것이 능력이 됐기 때문이다. 이들은 TV에서 자기 주장을 하며 성공을 이룬 여성에 공감하고, 여성에게 불평등한 사회에 대해서는 의식적으로 분노한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불평등한 상황에 처하면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거나 자진해서 착한 여자로 행동한다. “우리 사회가, 좋아하는 남자가, 주변 사람들이 착한 여자를 원하기 때문”이다. 신종 착한 여자 콤플렉스다.
신데렐라 콤플렉스는 ‘앨리렐라’, ‘네오신데렐라’ 콤플렉스로 변형됐다. 과거 신데렐라가 의존적이고 무능했다면 21세기의 네오신데렐라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모험심이 강하고 진취적이다. 이들은 자신의 능력으로 왕자의 궁궐에 들어가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경제적으로 더 나은 삶을 욕망하는 앨리렐라들은 조건이 좋은 남성을 만나기 위해 자신을 ‘관리’하고 남성들을 ‘저울질’하면서 이를 노력과 투자로 간주한다. 88만세대이자 삼포 세대인 젊은 여성들은 어렵게 취직해도 근무 환경은 열악하고 급여는 남성보다 낮기 때문에 ‘취집’을 꿈꾼다. 이렇게 이들은 신데렐라 콤플렉스의 그림자를 기꺼이 내면 깊숙이 받아들인다.
20년 전에는 여성이 자각만 한다면 얼마든지 자기 몸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전히 몸은 ‘전쟁터’다. 몸이 계급의 상징물이 된 현재, 외모가 스펙의 요소로 전면 부상하면서 오히려 외모 콤플렉스는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지적 콤플렉스는 약해진 것 같지만 더 복합적인 양상을 띤다. 프랑스 사회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마리 셰골렌 루아얄이 올랑드 내각의 환경에너지부 장관으로 내정될 때 언론은 그녀가 올랑드 대통령의 동거녀였다는 것을 기사 제목으로 올리고 사회당 대통령 후보였음을 그 다음에야 밝혔다. 지적인 여성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외면하고 싶은 사회의 욕망은 여성들에게 ‘독한 여성’ ‘마녀’ ‘악녀’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운다. 여성들의 업적이나 성취는 하찮은 것이 된다. 저자들은 “직업적 성공을 이룬 여성에 대한 비호감은 이들을 여전히 예외적이고 통념을 벗어난 존재로 보는 일종의 문화지체 현상이고 현실 부정”이라고 말한다.
성 콤플렉스의 경우 20년 전에는 순결과 정절 이데올로기 때문에 생겼지만 성이 개방된 지금은 여성들의 성 의식과 행동이 균열되면서 모순을 경험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슈퍼우먼 콤플렉스는 없어지기는커녕 슈퍼맘 콤플렉스로 확장, 강화되었다. 또 어머니가 딸의 학업, 직장생활, 육아를 비롯한 가정생활을 지원하면서 지나치게 밀접해진 모녀관계로 인해 ‘엄마딸 콤플렉스’가 생겼다. 여성들의 삶은 과연 나아졌을까. 이 콤플렉스들 뒤에는 ‘자아의 외주화’ 현상이 숨어 있다. 경쟁에 지친 여성들은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볼 틈이 없다. 그럴수록 심리상담사·멘토 등 전문가들에게 의존해 연애, 결혼, 성생활, 직장생활까지 코치 받는다. 살아남으려고 위장하다 보니 ‘나’는 사라졌다.
■ 이 콤플렉스들을 어찌 하나
20년 전보다 과연 여성들은 행복해졌을까. 저자들은 착한 여자의 가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격이어서, 착한 여자로 행동해야 하는 가식적으로 힘겨운 삶이 기다릴 뿐이다. 이는 뼛속까지 착한 여자로 살아야 했던 과거 여성의 삶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의식이 깨어 있기 때문에 삶과 의식의 불일치에서 비롯된 정신적 피로가 육체적 고단함을 압도하게 된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유명한 지도자에 의한 조직의 통합이 아니라 여성 자신이 삶을 변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저자들은 “표면적인 성평등 사회에서 여성의 삶을 지배하는 전통적 여성성 혹은 남성성에서 벗어나는 첫 관문은 ‘가면 벗기기’ ”라고 말한다. “자신의 진짜 얼굴을 들여다보고 성찰하는 일,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삶을 제어해 온 콤플렉스와 마주하는 일”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