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1일 <시사IN> 337호, 42,43,44,45면
글쓴이 김은남 기자 | ken@sisain.co.kr
‘땡박뉴스’ 보다못해 그들이 모였다
미디어협동조합 국민TV가 4월1일 개국을 선언했다. 소비자가 대거 참여해 언론 협동조합을 만든 예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조합원이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방송’은 성공할 수 있을까.
“자, 지금부터 리포트를 시작합니다.”
노종면 단장의 말이 떨어지자 마이크 앞에 선 수습기자가 긴장한 듯 주먹을 움켜쥔다.
“오늘 오전 10시 판문점에서 남북 고위급 회담을 위한 수석대표 접촉이 있었습니다.”
곧바로 말을 자르고 들어오는 노 단장. “뭔가 문장이 어색하죠? 그냥 남북 고위급 접촉이 있었다고 하면 훨씬 간결하겠죠?” 개국을 앞두고 준비가 한창인 국민TV 스튜디오(서울 마포구)에서 목격한 신입사원 교육 현장이다. 드디어 개국이다. 국민TV는 오는 4월1일 텔레비전 방송을 개국하겠다고 선언했다. 협동조합 형태로 국민TV를 창립한 지 거의 1년 만이다.
ⓒ시사IN 신선영
2월17일 열린 ‘국민TV 개국 설명회’에서 노종면 TF 단장이 <뉴스K> 구상을 밝히고 있다.
2012년 대선 직후 대안방송을 만들자며 몇몇 사람이 목소리를 높였을 때만 해도 현실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대선 일주일 뒤인 12월26일 대안방송을 만들기 위한 준비모임이 시작되고, 협동조합 형태로 방송을 만드는 쪽으로 논의의 가닥이 잡히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2013년 3월2일, ‘미디어협동조합 국민TV 설립준비위원회’에 참여한 발기인 1004명 중 절반가량인 500여 명이 모여 창립총회를 열었을 때 협동조합 출자금은 이미 10억원을 넘어선 상태였다.
10억원이면 적지 않은 돈이지만 방송을 시작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더 큰 문제는 이조차 실제로 조합 통장에 들어온 돈이 아니라 약정된 돈이었다는 사실이다. 정식으로 출자금을 받으려면 협동조합 설립필증을 받은 뒤 법인 계좌를 개설해야 하는데, 이 절차를 밟는 데만 40여 일이 걸렸다. 방송에 필요한 인력을 모으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 떠올린 것이 ‘모델하우스 모형’이었다고 김용민 PD는 말한다. <나는 꼼수다> 주역 중 한 명으로 국민TV 설립 과정에 처음부터 간여한 김 PD는 “TV를 개국하기 전이라도 시범적으로 보여줄 뭔가가 필요했다”라고 말했다. 2013년 4월1일 하루 12시간 편성으로 시작된 라디오 방송은, 두 달 만에 18시간 방송 체제로 확대됐다.
라디오로 방송된 콘텐츠가 재가공돼 팟캐스트로 유통되면서 화제작도 생겨났다. 팟캐스트 전문 포털인 팟빵을 보면 지난해 하반기 이래 <김용민의 조간브리핑> <노종면의 뉴스바>(현재는 <조상운의 뉴스바>로 변경) 등 국민TV에서 제작·방송한 프로그램이 인기 순위 10위권 내에 여럿 포진해 있음을 알 수 있다. 개중에는 편당 20만명 이상 청취하는 프로그램도 있다고 국민TV 측은 밝혔다.
라디오 방송이 자리를 잡으면서 조합원 가입에도 탄력이 붙었다. 출자금 또한 꾸준히 불어났다. 2014년 2월19일 현재, 국민TV 조합원은 2만1700여 명. 출자금은 36억4200만여 원에 달한다. 특히 지난해 9월 YTN 해직 기자인 노종면씨가 <뉴스타파>를 떠나 국민TV 개국을 위한 TF 단장을 맡은 게 또 하나의 계기가 됐다. 국민TV 서영석 이사(전 서프라이즈 대표)는 최근 들어서도 하루 평균 50명 이상 조합원이 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선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진보 성향 언론사들이 독자 수(또는 페이지뷰) 감소로 고전하는 데 비해 국민TV는 지속적인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성과 신뢰도 면에서 주목할 만한 방송인이 합류하면서 TV 개국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이것이 다시 조합원 증가로 이어진 것 같다”라고 서 이사는 말했다.
그렇다면 국민TV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비판적인 사람들은 미디어 협동조합이라는 모델 자체에 의구심을 표한다. 무엇보다 협동조합 형태로 자본금을 끌어들이는 데 한계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방송에 막대한 투자비용이 든다는 것은 상식으로 통한다. 종합편성채널의 경우 납입 자본금이 3000억~4000억원 수준이었다. 보도 전문 채널인 연합뉴스TV 자본금도 600억원대였다.
‘뉴스 PD’ 1인이 전방위로 책임지는 구조
그러나 비용은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고 국민TV 인사들은 주장한다. “국민TV도 초창기에는 ‘주식회사파’와 ‘협동조합파’ 간 갈등이 심각했다”라고 서영석 이사는 말했다. 사주와 광고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명분에는 동의하되, 방송에 필요한 자본 조달을 위해서는 주식회사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 만만찮았다는 것이다. 이에 맞서 협동조합파가 내세운 것은 미디어 트렌드의 변화였다. 디지털·인터넷 기술이 발달하고 소셜 미디어가 폭발적으로 확산되면서 낮은 비용으로 뉴스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일이 가능해진 만큼, ‘조합원이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협동조합 형태로 가는 것이 독립 언론의 정체성을 지키는 데 더 적합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시사IN 이명익
국민TV가 입주한 사옥의 지하 1층은 조합원이 이용할 수 있는 카페(위)로 꾸며져 있다.
실제로 4월1일 시작할 TV 방송은 철저하게 저비용 고효율 구조로 가게 될 것이라고 노종면 단장은 설명했다. 일단 이들이 선보이려는 대표 프로그램은 <뉴스K>라는 한 시간짜리 보도 프로그램이다(평일 오후 9~10시 방송). <뉴스K>를 제작하는 데 투입되는 인력은 20명 남짓. 그런데 흥미롭게도 취재기자, 카메라 기자, 편집 엔지니어 같은 구분이 없다. 대신 이들 모두는 ‘뉴스 PD’로 통한다. PD 1인이 아이템 기획에서 취재, 촬영, 편집, 리포트까지를 전방위로 책임지는 구조다. “출입처는 물론 정치부·사회부 따위 부서 간 구분도 없애려 한다. 기성 언론은 출입기자에 의해 취재 아이템이 정해지지만 우리는 시청자의 필요에 의해 취재진을 파견하게 될 것이다”라고 노 단장은 말했다.
그런데 한 시간짜리 뉴스 프로그램으로 과연 시청자의 눈길을 붙들고, 국민TV가 공언한 대로 ‘강력한 미디어’가 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노 단장은 “중요한 것은 분량보다 콘텐츠의 차별성이다”라고 말했다. 과거 YTN <돌발영상>의 경우 90분짜리 뉴스에 삽입된 2분짜리 코너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90분 뉴스를 능가하는 존재감을 발휘했다는 것. 소비자들의 뉴스 시청 행태 또한 과거와는 달라졌다. “젊은 층의 경우 생방송으로 뉴스를 보는 사람은 전체의 10%도 되지 않는다. <뉴스K>와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는 JTBC <뉴스9>도 본방보다 인터넷이나 팟캐스트로 뉴스를 소비하는 비중이 훨씬 높은 것으로 안다”라고 국민TV의 한 관계자는 말했다.
비용보다 더 큰 문제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대중 미디어에 협동조합이라는 옷이 과연 맞느냐 하는 것이다. 장종익 한신대 글로벌협력대 교수는 “외국에도 미디어 협동조합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특정 지역이나 집단을 기반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미국에 사는 이슬람권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협동조합을 만들어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이슬람어 방송을 송출하는 식이라는 것이다. ‘조합원 공통의 필요와 열망이 분명할 것.’ 이는 협동조합의 필요조건이기도 하다.
물론 공공의 이익을 대변하는 언론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 ‘조합원 공통의 열망’일 수는 있다. 지난해 7월 <언론 분야 협동조합의 현황과 과제>라는 심포지엄을 위해 한국을 찾은 이탈리아 언론인 람베르토 마초티 씨는 협동조합 매체가 늘어나는 이유를 상업적 이익에 매몰된 기성 언론에 대한 환멸에서 찾았다. 한국 특유의 퇴행적 언론 환경이 이를 더 부추긴 측면은 있지만 미디어 협동조합 또는 독립형 탐사매체의 증가는 그 자체로 세계적 추세라는 것이다. 단, 이탈리아에 있는 650여 개 언론·출판 협동조합 대부분은 생산자 협동조합, 곧 기자나 출판편집자가 중심이 된 협동조합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국민TV나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처럼 생산자는 물론 소비자(독자)가 대거 참여해 언론 협동조합을 만든 예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셈이다.
이유는 여럿이다. 무엇보다 협동조합으로 언론사를 운영하기에는 조합원을 관리하고 총회를 조직하는 등 조합 운영에 따르는 부담이 너무 크다고 장종익 교수는 지적했다. 경영상의 어려움도 감지된다. 국민TV나 프레시안이나 현재 수준의 출자금과 조합비만으로는 양질의 뉴스를 생산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조합원이 급증하지 않는 한 광고 수익이 일정하게 필요한데, 협동조합 매체에 대한 광고주들의 인식이 아직은 낮은 편이다. 국민TV의 경우 그나마 조합원이 기른 농산물 등 직거래 광고가 활성화되어 있는 편이다. 이로 인한 수익은 월 2000만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편집권 독립, 어떻게 지켜낼지도 관심사
편집권의 독립을 지켜내는 것도 쉬운 문제는 아니다. “협동조합 정관에 편집권 독립 조항을 못 박고는 있지만 목소리 큰 조합원이 편향된 여론을 주도할 우려는 언제든지 있다”라고 한 언론 협동조합 관계자는 말했다. 이는 공정성이 생명인 언론에 치명타로 작용할 수 있다. 가뜩이나 국민TV 라디오는 편향성 시비에 휘말린 바 있다. 이른바 친노무현 인사들이 이사진과 출연진에 다수 포진해 있다는 이유에서다.
국민TV 측은 특정 청취층을 겨냥한 매체 특성상 ‘경향성과 편향성 사이를 오갈 수밖에 없었던’ 라디오와 달리 텔레비전은 철저하게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보도 태도를 견지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조합원 대다수 또한 이를 원한다는 것이다. 2월17일 텔레비전 개국 설명회에 참여한 조합원 김 아무개씨(43)는 “요즘 보면 진영 논리에 빠진 언론이 많다. 제작진이 정한 아이템과 프레임만 강요하는 언론도 많다. 국민TV는 이래서는 안 된다”라고 주문했다.
(취재 도움:이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