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 지구라고 다를까
조천호 대기과학자
• 출처: 2018년 8월 16일 [경향신문]
ㆍ지구 스스로 찜통이 될 수 있다
온실가스 안 줄이면2100년엔 지구 이렇게 국립기상과학원이 기후변화 모델로 전망한 2100년 7월의 지구 평균 지상기온. 온실가스를 전혀 저감하지 않는 상황에서 기온 등치선으로 표시했다. 색깔이 붉을수록 기온이 높다. 눈에 띄는 것은 북극지역에조차 영상 기온이 나타난다는 점으로, 그 결과 북극 해빙은 모두 녹아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립기상과학원 제공
인간이 대기에 쏟아 넣은 온실가스가 지구 열을 붙잡기 때문에 극단적인 기후변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온실가스를 지속하여 배출하면 지구는 한순간 ‘찜통 지구’에 진입하는 ‘티핑 포인트’를 넘게 된다.
‘찜통 지구(Hothouse Earth)’는 지구가 스스로 온실가스를 배출해 기후변화를 증폭시키는 상태를 말한다. 물이 가득 찬 컵에 물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지면 물 높이가 컵 높이 위로 서서히 올라간다. 그러다가 컵보다 높아진 물이 마지막 더해진 한 방울에 의해 한꺼번에 무너진다. 이처럼 미미하게 진행되다가 어느 순간에 전체 균형이 깨져버려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는 시점을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라 한다.
기후변화의 티핑 포인트를 넘지 않기 위해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산업혁명 이전보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2도 아래로 유지하되 1.5도를 넘지 않게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현재 인류가 1도만 상승시켰는데도 전 세계적으로 폭염, 가뭄, 홍수와 강력한 태풍 등의 발생 횟수와 강도가 뚜렷하게 증가하고 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산업화 이후 약 40% 증가했다. 공기분자 100만개당 이산화탄소 120개가 늘어난 것이다. 이산화탄소는 대기오염처럼 흘러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차곡차곡 쌓인다. 온난화 ‘난로’를 계속 켜놓고 사는 셈인데, 기온을 10년마다 0.17도씩 상승시킨다. 매년 공기분자 100만개당 이산화탄소 2개씩을 온난화 난로에 더 집어넣어 화력이 점차 더 강해지고 있다.
기온은 이산화탄소 축적량에 비례해 점진적으로 상승하지 않는다.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요인은 온실가스 배출만이 유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구는 자동조절되는 복잡 시스템으로, 그 안의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과 서로 연결되어 되먹임(feedback) 작용을 한다. 음의 되먹임은 기온 상승을 둔화시키는 복원력으로 작용하는 반면, 양의 되먹임은 기온 상승을 증폭시킨다.
지금까지 지구는 인류가 배출한 이산화탄소가 가한 충격을 스스로 흡수해왔다. 배출된 전체 이산화탄소량에서 육상식물이 30%, 해양이 23%를 흡수하여 대기 중에는 약 47%만 머무른다. 또한 바다가 온실가스로 인한 열기의 90% 이상을 흡수한다. 이 음의 되먹임이 작용하지 않았다면 기온이 더욱 올랐을 것이다.
이처럼 지구는 충격이나 교란으로 인해 불안정한 상태를 회복시킬 수 있는 복원력(resilience)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외부 충격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면 지구는 복원력을 상실한다. 복원력은 스프링을 조금 늘렸다 놓으면 제자리로 돌아오지만, 너무 크게 당기면 제자리로 돌아오질 못하는 이치와 같다.
지구는 끝없는 인내심과 수용력을 지닌 것처럼 보이므로 기후변화 충격에도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열 받는 상황에서 누군가 한두 마디로 더 약을 올리면 스스로 폭발하기 쉬운 것과 마찬가지로, 지구도 온실가스라는 외부 충격으로 열 받은 상태에서 한계를 넘어 온실가스가 더해지면 열을 자체적으로 증폭시킨다. 즉 복원력을 상실하면 ‘음의 되먹임’이 ‘양의 되먹임’으로 방향을 틀게 되는 티핑 포인트가 일어난다. 지구 시스템 내부에는 양의 되먹임으로 기후변화를 증폭시킬 수 있는 여러 가지 티핑 요소(tipping element)가 있다.
파리기후변화협약 수준(1~2.9도) 이상으로 기온이 상승하면 그린란드 빙하, 남극 서쪽 빙하와 여름철 북극 해빙이 감소하는 티핑 요소가 활성화된다. 전 지구 해수면 상승폭은 지난 세기 동안 매년 1.8㎜인 데 반해, 1990년대 초반 이후 매년 3.3㎜로 증가하였다. 그린란드 빙하가 전체 해수면 고도 상승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3년 5%에서 2014년에는 25%로 증가했다. 그린란드는 해수면 고도를 약 7m 상승시킬 수 있는 빙하를 가지고 있다. 현재 해수면을 3~4m 상승시킬 수 있는 남극 서쪽 빙하가 불안정해지고 있다. 또한 북극해 위에 떠 있는 해빙의 여름철 최소 면적이 1979년 이후 10년에 13.3%씩 줄어들고 있다.
전남 나주시 왕곡면에 있는 신포저수지가 가뭄에 말라 거북등처럼 갈라진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빙하는 반사도가 높기 때문에 내리쬐는 태양 빛의 많은 부분을 다시 우주 공간으로 반사해 지구가 뜨거워지는 것을 막는다. 하지만 지구가 온난해짐에 따라 빙하가 녹게 되고, 그 결과 어두운 색의 육지와 해양이 드러난다. 이로 인해 태양 에너지가 지구에 더 많이 흡수되어 결국 온난화를 강화하는 양의 되먹임이 일어난다.
바다는 수온이 상승하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탄산음료가 따뜻해지면 거품이 더 빨리 사라지듯 바다도 차가울 때보다 따뜻할 때 함유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량이 더 적어지기 때문이다. 이산화탄소가 대기를 덥히면 바다도 함께 따뜻해져서 바다가 흡수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적어진다. 이에 따라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더 높아지는 양의 되먹임이 일어난다.
지구 평균기온이 3도 이상 따뜻해지면, 다음 단계의 티핑 요소인 대서양 순환 변화와 숲의 파괴로 진입할 수 있다. 대서양 해류는 열대 지역의 따뜻한 바닷물을 유럽 쪽으로 이끈다. 그래서 겨울철에 북위 37.4도의 서울보다 고위도에 위치한 북위 51.5도의 런던이 더 따뜻하다. 대서양 해류는 전 세계 해양에 걸쳐 흐르는데, 열과 염분을 수송하고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그린란드 빙하가 녹으면 북극해의 표층수가 냉각되고 염분이 낮아져 대서양 순환에 영향을 미친다. 이 거대한 해류 흐름이 변화되면 세계 곳곳에서 기상이변이 발생한다. 또한 남반구 해양에 열을 축적해 남극의 동쪽 빙하를 수백년에 걸쳐 녹일 수 있다.
산불과 삼림 벌채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이미 인류가 배출하는 양 중 약 12%를 차지한다. 숲이 파괴되는 경우 나무가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썩을 때 혹은 산불로 탈 때 나무가 저장했던 이산화탄소를 다시 배출한다. 아마존 열대 우림은 기후변화와 벌채로 급격하게 파괴되고 있으며, 토양에 풍부하게 고정되어 있던 탄소가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어 이산화탄소로 대기에 배출될 수 있다. 북반구 고위도에 위치한 아한대 숲은 육상 식물에서 흡수한 이산화탄소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이 아한대 숲이 기후변화로 증가한 해충과 산불로 파괴되기 시작했다.
북반구 고위도가 지속해서 온난화되면 영구동토층이 녹는 티핑 포인트가 발생할 수 있다.
북반구 육지 면적의 거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영구동토층은 대기 안에 있는 탄소량의 약 2배를 가지고 있다. 기온 상승이 2도 이하라면, 대부분의 영구동토층은 얼어 있는 상태를 유지한다. 이때 탄소는 비활성 상태로 토양에 고정되어 있다. 반면, 영구동토층이 녹을 경우에는 미생물 활동으로 유기 물질의 분해가 증가하여 이산화탄소와 메탄이 대기 중에 방출된다. 특히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지 않는 경우 기온이 5도 이상 상승하여 금세기 말에 영구동토층을 광범위하게 파괴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때 영구동토층에서 배출되는 탄소량이 식생이 흡수하는 탄소량보다 많아진다. 즉 지구온난화로 영구동토층이 녹아 온실가스가 배출되면 온난화가 심화하는 양의 되먹임이 이어진다.
포르투갈 남부 몬치크 지역에서는 대규모 산불이 나 주민들이 대피 준비를 하고 있다.
파리기후변화협약 수준의 기온 상승으로도 연속적으로 티핑 요소를 자극할 수 있다. 도미노처럼 한번 넘어지면 중간에 정지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우리가 이산화탄소 배출을 멈추더라도 숲, 바다와 영구동토층이 탄소 흡수원에서 배출원으로 바뀌는 찜통 지구가 되기 때문이다. 즉 지구는 탄소를 저장하는 친구에서 탄소를 방출하는 적군으로 전환된다. 지금 온난화 수준은 우리가 대응할 수 있지만, 일단 찜통 지구가 되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려는 우리 노력은 쓸데없게 된다.
독일, 스웨덴, 덴마크, 호주의 기후과학자 16명이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올해 7월 발표한 논문에서 찜통 지구에 진입하면 지구 평균기온이 4~5도 상승하고 해수면이 10~60m 높아질 수 있음을 밝혔다. 한때 여기저기서 발생하던 지구 위기가 지속해서 모든 곳에서 발생하게 된다. 이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찜통 지구에서는 기후에 의존하는 하부 체계도 위험에 처하게 된다. 대표적인 예로 농업은 예측 가능한 기온과 강수량에 의존하기 때문에 기후변화에 취약하다. 현재 각 지역에서 산출되는 곡물량의 증가와 감소가 전 세계적으로 대략적인 균형을 이룬다. 그러나 찜통 지구에서는 농업 생산량이 전반적으로 감소하여 식량 위기가 올 수 있다. 이에 따른 빈곤으로 불안정한 사회가 되고, 대량 이주에 따른 국가 간 갈등이 증가하게 된다.
전 세계 연안 지역, 특히 저지대 삼각주와 인접한 연안의 바다와 생태계는 인류의 삶에 매우 중요하다. 이 지역은 세계 인구의 대부분이 살고 대도시 대부분이 위치하여 국가 경제와 국제 무역에 필수적인 인프라의 상당 부분을 담당한다. 찜통 지구는 연안 저지대에 상시 홍수와 폭풍 해일로 인한 침수 위험을 증가시킨다. 이처럼 자연만을 통제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정치, 경제와 사회도 급속하고 심각한 변화와 불확실성으로 통제할 수 없게 된다. 즉 우리 운명을 우리가 가지지 못하고 지구에 완전히 넘겨주게 된다. 지금까지의 기후와 지구환경에 적합하도록 만들어진 대부분의 체계가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의 원인과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가 단선적으로 비례하지 않으므로 찜통 지구에 도달했다는 것은 ‘일이 일어난 다음’에야 분명해진다. 이러니 우리는 경고 신호를 너무 늦게 알아차리기 십상이고, 그러는 만큼 적시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너무 늦을 때까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는 복잡한 지구 시스템에 우리는 보다 민감하고 능동적이어야 한다.
기후변화의 징후를 읽어낼 의지가 없거나 그런 능력이 없는 사회, 오히려 과학의 경고를 무시하려는 사회에서 화석연료에 기반한 경제개발은 거침없이 앞만 보며 내달린다. 이로 인하여 기후변화의 티핑 포인트로 위기를 맞고 있는 이때 우리에게는 인식의 티핑 포인트가 필요하다.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사회에서 자연이 재생할 수 있는 수준에 맞추는 사회로 전환을 해야 한다.
찜통 지구는 희망 없는 종말론을 제시하려는 게 아니다. 기후과학에 대한 지식이 축적될수록 위기의 순간에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고 불확실한 미래를 헤쳐 나갈 수 있는 깊이 있는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다. 또한 기후변화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한다면, 우리는 기후변화에 대응할 힘을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찜통 지구는 과학에서 다뤄야 하는 실존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된다.
▶필자 조천호
대기과학자. 국립기상과학원에서 30년간 일하고 원장으로 퇴임했다. 연세대학교에서 대기과학을 공부했다. 전 세계 날씨를 예측하는 수치모델과 전 세계 탄소를 추적하는 시스템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구축했다. 기후변화 과학이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공부하고 있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에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