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건건 탈원전 시비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출처: 2018년 8월 2일 [경향신문]
최근 들어 탈원전 비판 기사와 칼럼, 사설이 부쩍 많이 쏟아졌다. 기록적 폭염이 연일 지속되면서 냉방전력 수요가 늘자 전력 수급 불안을 우려하며 이런 상황을 탈원전정책 탓으로 돌렸다. 탈원전하겠다면서 결국 전력공급이 긴박하게 필요한 순간에 원전에 기대는 건 자가당착으로, 탈원전을 재고하란다.
기사 제목을 보자: <전력수요 예상 초월하자…탈원전 정부, 원전에 SOS> <‘탈원전’ 정부, 폭염 덮치자 “원전 더 돌려라”> <전력수급 문제없다더니…허둥지둥 원전 5기 더 돌린다> <막무가내 탈원전하더니 전력 모자라자 “원전 추가 가동”> <엉터리 예측에 원전 추가 가동…그래도 ‘탈원전’인가> <폭염에 또 원전 가동률 높여야 하는 탈원전 허구성> <탈원전해도 전력대란 없다는 말 믿기 어렵다> <폭염에 원전 재가동한 정부, 민망해진 탈원전정책> <폭염 한방에 전력예비율 위태…원전 없인 감당이 안된다> <‘탈원전 부메랑’…전력수급 비상> <‘탈원전’ 열중하다 폭염에 덴 정부…결국 원전에 기댔다> 등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다.
결국 전력수요가 늘어나니 여유 있게 전력을 공급하려면 탈원전을 포기해야 한다는 거다. 이런 보도, 참으로 무책임하다. 탈원전이 왜 국정과제가 되었는지, 탈원전을 가져온 문제상황이 제대로 해소되었는지,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이런 비판과 달리 국민 여론은 탈원전에 호의적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6월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84.6%가 탈원전·탈석탄 에너지전환정책을 지지하였다. 국민 한 사람당 월 1만5013원의 전환비용 지불 의사가 있다고도 했다.
과거에는 경제성, 그것도 사회환경비용을 도외시한 불충분한 경제성을 근거로 안정적인 전력 공급에 관심을 두었지만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목격하고 기후변화와 미세먼지 위험에 노출된 지금 상황에서는 환경과 생명, 안전이 중심 가치가 되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해명자료와 소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 4월 산업부는 하계(7월9일~9월14일) 전력수급대책 수립과정에서 원전 가동 일정을 일부 조정했다. 이 계획에 따른 조치들임에도 다수 언론은 탈원전 정책으로 멈춰 있던 원전들을 폭염 때문에 황급히 재가동했다고 비난하였다. 모든 발전소는 최대전력수요 기간에 최대한 가동할 수 있도록 정비 일정을 조정하는 게 원칙인데도 말이다.
탈원전을 선언했다고 우리가 벌써 탈원전 상황에 들어섰는가? 그렇지 않다. 문재인 정부에서 원전 시설용량은 지속적으로 확대된다. 문 대통령 재임기간인 2022년까지 신규 원전 4기가 추가되고 2023년에도 신고리 6호기가 추가되어 불과 5년 안에 총 5기(7000㎿)가 가동에 들어간다. 발전량의 30%를 차지하는 원전을 하루아침에 줄일 수는 없다. 에너지 효율개선과 재생가능에너지 확대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탈원전은 60년 이상에 걸친 장기 계획이다.
언론은 책임 있는 사회적 공기로서 정확하게 사실을 전달하고 여론을 선도해야 한다. 전력 수요 예측을 좀 더 여유 있게 하고 원전만이 그런 수요를 감당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보다 현재의 전력 수요나 수요 증가가 온당한 것인지, 어디에서 얼마나 낭비되고 있는지,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를 다뤄야 한다.
에너지전환은 도도한 시대적 흐름이다. 지난해 세계 신규 발전설비 투자를 보면, 재생가능에너지엔 315조원, 원전엔 4조원이 투자되었다. 더군다나 사용후핵연료 문제에 대한 아무런 답도 갖지 않은 상태에서, 지진이 빈번해져 원전 안전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당장의 편리와 단기적 경제성을 이유로 원전을 더 짓고 에너지 소비를 더 늘리겠다는 건 경제를 망치고 미래세대에게 죄를 짓는 일이다.
탈원전의 길, 갈 것이냐 말 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갈 것이냐가 문제다. 책임 있는 언론의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