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훈의 <광장>을 두 번째로 읽는다. 맨 처음 읽은 해가 언제인지 가뭇하기만 하다. 지금 읽은 건 1976년 판본이다.(소설이 최초로 나온 해는 1960년) 작가가 25살 때 광장을 썼듯이 나도 20대 중반 쯤에 이 소설을 읽었다. 그때의 감동이라니. 세련된 문체에 지적 탐색에 충만한 언어는 1970년대 젊음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광장을 필두로 최인훈의 것이라면 닥치는 대로 읽었다. 더러 안 읽은 건 희곡이나 일부 평론 따위. 그러다가 <화두>를 끝으로 더 이상 읽지 못했다. 실질적으로 작가가 작품 활동을 접었던 탓이었다.
두 번 읽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좀 시답잖다. 최근 가까운 친구(유명 인사)가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소설 광장을 다시금 불러냈다. 그는 광장을 읽고 한때 인도를 “이상향”으로 삼았노라했다. 의문이 일었다. 명준이 원한 데는 “중립국”이었지 인도는 아니었잖은가. 이어 작가가 끊임없이 개작해왔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어디를 어떻게 고쳤을까. 60년대 ‘고전’을 찾아서 첫사랑의 이름을 좇듯이 다시 광장으로 간다. 관련 대목부터 훑어봤다. 중립국이야 틀릴 리 없다. 한데 기억 회로 일부가 샛길로 빠졌다. 인도=이상향에 저항감이 발동했는지, 남미 쪽이 대신 떠올랐었다. 하지만 타고르호란 배 이름 하나로 단박에 풀렸다. 명준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푸른 광장’도 인도양이다.
반면 신기할 정도로 기억이 싱싱한 경우도 있다. 문체가 금방 눈에 잡힌다. 한자와 외국어는 전면적으로 우리말로 등치시키고 문장도 다듬은 자국이 뚜렷했다. 거듭했을 작가의 노고에 고마워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예전 게 더 좋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우선 어색한 데가 많다. 그러니 문장은 느슨해지고 이따금 함의마저 떨어뜨린다. 사례 하나를 골라본다. “낱”과 “더미”의 대비는 상큼하니 그럴싸하다. 한데 “어머니와 아들, 아득한 옛적부터의 사람끼리의 몸짓”(151쪽)과 “어머니와 아들, 그 태고적 관계”는 어떠한가. 환기시키는 힘과 의미의 명료함에서 후자가 낫지 않은가. 쉼표는 또 왜 그리 많은가. 최인훈류의 유창함을 다치게 하지 않았는지.
최인훈의 소설은 이야기가 부족하고 사변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를 의식했음인지 새 판본은 이야깃거리가 많다. 명준이 인민군으로 복무하며 남녘땅 어느 동굴에서 은혜와 나누는 사랑이 그렇다. 주인공이 자살하기 직전에 돌연 나타나는 존재, 명준의 딸! 그 존재는 그야말로 사랑의 ‘육화’가 아닌가. 느닷없이 친구를 고문하는 장면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비록 꿈속이었을지라도 친구를 고문하다니 뜻밖이었다. 그러나 이야기에 구체성을 부여하려는 문학장치로 보였다. 아니면 주인공이 마주할 필연적 결말을 강조하거나 주인공에게 “지나치게 무거운 짐을 지운” 데 대한 보상일 수도 있다.
한편 남과 북을 향해 준엄하게 꾸짖던 이명준의 저 도저한 ‘평결’은 어떠한가.
인간은 밀실에서만은 살 수 없어요. 광장과 이어져 있어요. (...) 한국경제의 광장에는 사기의 안개 속에 협박의 불꽃이 터지고 허영의 애드벌룬이 떠돕니다. 문화의 광장 말입니까? 헛소리의 꿈이 만발합니다. (...) 약탈과 사기만 끝나면 광장은 텅빕니다. 광장이 죽은 곳, 이게 남한이 아닙니까. 광장은 비어 있습니다.
명준이 북녘에서 만난 것은 잿빛공화국이었다. 이 만주의 노을처럼 핏빛으로 타면서, 나라의 팔자를 고치는 들뜸 속에 살고 있는 공화국이 아니었다. (...) 수많은 고결한 심장의 소유자들이, 이런 공화국을 만들려고 중세기의 순교자들보다 더 거룩한 죽음을 한 건 아니잖습니까. 그들의 피에 대한 배반입니다.
필경 수정한 데가 있을 법하지만 기조만큼은 예전 그대로인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로 깜짝 놀랄 만한 문장도 발견했다. 이건 모름지기 개작을 거듭하며 새로 넣었을 성싶다.
마르크스의 이론이란, 정확하게는 자기 시대를 분석한 그의 저술 속에서 쓴, 방법론을 가리켜야 합니다. 어떤 이론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정책에 대해서는 방법론의 창시자조차도 반드시는 정확하게 달 수 없습니다. 하물며 계승자의 경우에는, 어느 누구도 해석권을 독점해서는 안 됩니다. (...) 진리는 고치는 것이 용서 안 될 만큼까지 최종적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데까지 믿는 것입니다.
광장과 밀실의 ‘대위법’. 이런 이항대립 앞에서 “남산길의 정 선생’‘이나 북쪽의 아버지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럼에도 창공에 힘차게 펄럭이는 깃발 같은 푸르른 표상의 언어.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광장-밀실은 끊임없이 길항하기 마련인가. 그렇지 않으리라. 대립 요소 속에 이미 내재하는 포용을 믿기에. 명준에게 가장 확실한 진리는 사랑이었다. 광장과 밀실은 사랑으로 화해한다. 명준의 선택(자살)은 이데올로기의 제물이 아니라 사랑으로 말미암은 순교다. 그렇다면 예전의 <광장> 독법은 ’광장‘ 쪽으로 너무 기울어졌던 셈이다.
조금 오래 전 한 친구가 말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소설로 한국과 그 바깥에서 하나씩 고르라면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과 광장이다.” ”노벨문학상감 아닌가?“하면서도 속으론 ‘그렇게까지 평가받을 만한지’ 자신이 없었다. 여기저기 아쉬운 지점도 눈에 들어온다. 이데올로기 비판은 패기 가득하지만 오늘날 조망해본다면 엉성하고 거칠다. 여성에 대한 편견에 혐의를 둘 만한 대목도 나온다. 그러나 아무려나 광장은 한국 전후문학의 기념비적 작품이다. 작품의 무대는 1950년대 동족상잔의 참화를 겪은 분단국이다. 소설은 그로부터 겨우 7년이 지난 후 탄생한 아시아 최초의 시민혁명(4.19) 속에서 나왔다.
주인공이 선택한 실존적 죽음은 분단체제에 대한 전면 거부를 뜻한다. 그러한 죽음은 이상향을 간구하는 보편의 생명력을 얻으며 울림을 전파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여전히 분단 상태다. 이 분단 상태가 지속되는 동안 광장은 우리를 억압하고 옥죄는 이데올로기의 기만성을 고발할 것이다. <광장>이 첫선을 보인 지 한 세대가 지난 1994년 문학평론가 김병익 선생의 논평에 같이하고 싶다. “분단 상황이 해소되고 나서도 광장은 여전히 읽힐 것이다. 어느 시대 어느 정황에서나, 그것은 인간이 살아 있는 의무로서 지워진 사랑의 운명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