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겨레 인터넷 판 2007년 7월 24일자에서 펌.
2. 글쓴이는 박상미-화가, 작가
자전거는 이제 더 이상 비토리오 데시카의 <자전거 도둑>에서의 애틋한 자전거가 아니다. 유기농이 대안이 되고, 채식주의가 유행을 하고, 오일 값이 오르고, 앨 고어의 "불편한 진실"이 히트를 치면서 자전거는 이제 친환경 소비주의의 아이콘이 되었다. 체증이 심한 뉴욕에서 자전거의 이용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요즘 들어 특히 뉴욕의 거리는 자전거 갤러리를 방불케 한다. 그 중에서도 백미가 '픽스드기어fixed gear' 자전거이다. 일명 ‘픽시’라고 불리는 픽스드기어 자전거는 뒷바퀴와 페달이 한 개의 기어에 의해 연결된 것으로, 브레이크가 없는 싱글 스피드 경주용 자전거가 이에 속한다. 브레이크가 없기 때문에 자전거를 세우려면 페달을 뒤로 돌려야 하고 ‘코스트coast’라고 불리는 타력 주행은 맛볼 수가 없다.
그러니까 자전거를 타고 있는 한 계속 페달을 밟지 않으면 갈 수도 설 수도 없는 것이다. 위험하게만 들리는 이 자전거가 뉴욕의 자전거 문화를 거의 평정한 듯 흔하게 눈에 띄는 것이 요즘 추세다. » ‘브레이크 없는 자전거(픽시)’ 열풍뉴욕에 픽시 열풍을 몰고 온 것은 ‘메신저’들로, 한국으로 치면 ‘퀵서비스’와 비슷한 서비스 종사자들이다. 이들은 이미 ‘메신저 백’이라는 가방을 유행시킨 적이 있는 걸 보면 이들의 패션 영향력은 상당하다. 어찌됐든 여피족들이 한창 다단 기어 하이테크 자전거에 몰두하고 있을 무렵, 메신저들의 영향을 받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도 만들 수 있었던 픽시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건 일종의 로우테크의 미학의 승리로 볼 수 있는데, 이런 심플한 구조를 선호하는 유행은 자전거 뿐 아니라, 음식 문화(변형을 최소화한 자연식 선호), 음향 문화(실제 공연장 음향에 가까운 소리를 내는 싱글 드라이브 스피커의 선호) 등 이미 문화 전역에 확산되어 있다. 지금 픽시를 타고 다니는 뉴요커들은 젊은이들 뿐 아니라 월스트릿 은행가, 변호사, 교수들에 이르기까지 엄청나게 다양해졌는데, 이들이 픽시를 선호하는 이유는 비슷하다. 자전거의 구조미에 더하여 거의 ‘선적’인 경험이 그것이다.
픽시를 타기 위해서는 숙련된 기술 뿐 아니라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자전거와 내가 완전히 한몸이 되지 않고는 뉴욕의 차량들 속에서 질주하는 해방감을 맛볼 수 없다는 것이다. 보드리야르가 이미 오래 전에 지적했듯, 물건을 소비하는 것은 물건의 가지는 의미의 시스템을 소비하는 것이다. 뉴요커들에게 픽시는 단순한 자전거가 아니라 그 이상인 것은 물론이다. 요즘 은 “비앙키”와 같이 경주용 전문 브랜드에서 완제품을 사기도 하지만, 오래된 보통 자전거를 픽스드기어로 바꾸는 것이 ‘픽시 문화’의 전통이다. 전통적인 주문 제작을 고집하는 픽시족들은 재활용, 친환경을 주창하고 심지어는 자유, 영적인 아나키즘을 부르짖기까지 한다. 소비는 이제 정체성, 지위 부여를 넘어 우리에게 영적 해방까지 가져다줄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