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총장은 "꽃을 든 남자"
총신대학교 총장 선출을 위한 이사회를 하루 앞둔 8월의 마지막 날. 아침 일찍 여기저기 전화로 취재하면서
열이 올랐다.
총장 뽑는데 50만원, 100만원 돈봉투가 웬일?
완전히 뒤죽박죽이 된 마음으로 차에 올랐다. 집 앞 골목을 빠져 나와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렸다.
언뜻 보니 집 바로 건너편에 있는 성공회대학교 정문에 걸려 있는 현수막 내용이 바뀐 거 같다.
새학기를 맞아 학생들을 다시 만나니 반갑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현수막 바로 밑에서 개량한복을 입은
사람이 교문을 들어서는 학생들에게 뭔가를 나눠주는 모습이 보였다. 멀리서 보니 잡상인 같기도 한데,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게 이상했다. 기자의 본능적인 감각일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차를 학교 앞으로 돌렸다. 직감이 맞았다. 성공회대 신임총장 김성수 주교였다.
김성수 총장이 교문을 들어서는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장미 꽃 한 송이와 부채를 하나씩 나눠주면서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급한 마음에 사진 몇 장을 대충 찍은 뒤 김 총장에게 인사했다.
"교수님들이 하도 부추겨서 이렇게 나왔다"고 말한다.
그런데 다른 교수는 "2학기가 시작된 첫 날, 총장님이 학생들을 직접 만나 인사하고 싶어했다"면서
다른 소리를 했다. 둘 중 한 사람은 분명히 위증(?)을 하고 있었다.
누구 말이 사실인지 더 이상 캐고 싶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나는 더 이상 궁금한 것도 없이 그저 "너무 보기 좋다"는 감탄사만 반복했다.
김성수 총장은 이재정 신부의 뒤를 이어 7월초 성공회대 제3대 총장으로 부임했다.
70세의 고령에도 경실련 고문,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이사, 반부패국민연대 회장 등을 맡으면서
사회개혁의 한 축을 지켜주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장애인 재활시설인 [우리마을]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성자의 모습을 세인들에게 보여주었던 그다.
언론에 많이 소개돼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겠다. 역시 성공회대에 어울리는 인물이었고,
그 인물에 어울리는 오늘 아침 장면이었다. 순간적으로 이뤄진 취재였지만,
사무실로 출근하는 내 마음은 왜 이다지도 들뜨는지.
아침 전화 취재를 하면서 생긴 스트레스가 확 사라져 버렸다.
1년 전 이곳 온수동으로 이사한 뒤 불편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약국도 하나, 수퍼마켓도 하나, 철물점도 하나, 비디오 가게도 하나. 병원도 없고 은행도 없고
손님 오면 모실 만한 변변한 식당 하나 없는 곳. 그러나 거기엔 성공회대가 있었다.
4살 짜리 딸 예진이가 하루에 한번씩 등교(?)하는 곳(요즘은 더워서 쉬고 있지만),
며칠에 한번씩이지만 가족들과 함께 산책하며 저녁 바람 쐬는 곳,
딸이 크면 더도 덜도 말고 이곳에 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게 해준 곳,
예진이 엄마가 일주일에 한번씩 교사아카데미를 통해 양육받는 곳.
모든 부족함이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주는 곳.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총신대가 있어서 사당동 주민들이 행복해 하고 있을까? 부족한 게 많아도 총신대가 있기 때문에
살 맛 나는 동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다시 한번 답답해진다.
총신대는 이런 멋진 총장을 뽑을 수 없을까, 지역주민들에게 넉넉함을 안겨줄 수는 없을까,
그 학교를 졸업하지 않았지만 그 동네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자랑하고 싶어지는 학교가 될 수는 없을까.
학생들의 손에 일일이 쥐어준 부채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우리는 '한 사람의 지도자가 아니라 열 명의 더불어 살 줄 아는 사람'을 양성합니다.
" 8월의 마지막 날 아침에 본 김성수 성공회대 총장은 "꽃을 든 남자"였다.
2학기 개강 첫 날 학생들을 직접 만나 인사하고 싶다면서, 교문을 들어서는 학생들에게
장미 꽃 한송이와 부채 하나씩을 쥐어주고 인사하는 그에게서, 오늘 우리에게 절실한 지도자의
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오마이뉴스에서 퍼옴-상당기간이 흘러간 기사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