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아미, 방탄소년단이랑 명상춤을!

운성스님 마음치유학교 교육국장·BTN불교라디오 울림 진행자
출처: 2018년10월12일 [경향신문]
곳곳을 할퀴고 지나갔지만, 태풍을 겪어낸 가을하늘의 자태는 영롱함이 더욱 깊다. 그런데 저 같은 하늘도 보는 이의 상태에 따라 실제로는 조금씩 다른 파란색으로 보인다. 뇌 과학적으로는 ‘유전적 다형(遺傳的 多形, genetic polymorphism)’이 작용하기 때문인데, 각자 카르마(Karma,업, 業)대로 보니 색이 달라지는 이치다.
“스님께서 명상그룹에서 안내해 주신 대로 명상하고 있는데요, ‘내가 내 마음 보는’ 명상인데도 도대체 속 시끄러워 집중이 안돼요. 어쩌죠?” 한 존재 안에도 여러 습관의 자아들이 막무가내로 날뛰는 통에, 아차 하는 순간 우리는 혼미해져 비포장도로로 빠져든다. 하물며 타인과 겪어내는 ‘관계의 결’이야 오죽 울퉁불퉁일까?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이 쉴 곳 없네’를 부르며 평행선을 달리는 인생길.
이 고뇌의 복판에서도 TV를 틀면 연일 자본주의로부터 태어난 광고들이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은 누군가가 돼야만 성공이라며 존재 본연의 가치를 왜곡시키고 껍데기 장엄을 부추기며 돈벌이 중이다. 자신의 고유한 빛을 꺼내 쓰기엔 아직 연약한 사람들은 오늘도 ‘괴로움 증폭기’의 버튼을 열심히 누르는 중. 비교와 평가의 버티기 대회에 지쳐갈 무렵, “슬프던 me 아프던 me 더 아름다울 美”들에게 “그 아름다움이 있다고 아는 마음이 사랑으로 가는 길”이라 외치는 무모한 청년들이 있었으니, 방탄소년단(BTS)이다. 9월24일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 회의장을 가득 메운 그들의 언어는 ‘상처꽃’이었다. 자신들의 삶 그대로를 신성한 뿌리 삼아, 세우고 흔들리고 상처받고 무너짐을 반복한 끝에 피워 올린 상처꽃.
“이런 내 실수와 잘못들 모두 나이며, 내 삶의 별자리의 가장 밝은 별무리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여러분의 심장을 뛰게 만듭니까? 여러분의 목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누구이든, 어느 나라 출신이든, 피부색이 어떻든, 성 정체성이 어떻든, 여러분 자신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상처투성이 ‘내면아이’들의 집합체인 우리는, 덩치와 머리만 커버린 괴이한 ‘어른아이’가 되어버렸다. 지하실에 웅크린 내면아이들은 스멀스멀 오르는 ‘정서적 허기짐’에, 순식간에 어떤 대상을 멘토로 우상화해 버리거나, 섣불리 중독에 빠져든다. 가면으로 쓰기 딱 좋은 명품이나 직위를 탐닉하고, 내면을 향한 공격성의 화살촉을 밖으로 쏘는 악플, 왕따, 갑질 뒤에 꽁꽁 숨어, 정작 자신은 어떤 존재인지, 지금 어디가 아픈 건지 목소리를 들어줄 귀를 잃어버렸다. 서로 ‘다름’이 마땅할 저 파란 하늘을 두고도 굳이 ‘똑같은’ 파란 하늘로 끼워 맞추려 허비한 날들, 얼마나 많았던가?
어디로 가야 할까? 실은 어디로 가야 할 필요가 없다. 지금 여기서 모르면, 히말라야로 들어가도 모른다. 지금, 잠시 멈추고 하늘을 보자. 이 순간 밀물과 썰물처럼 오고 가는 들숨 날숨의 촉감이 어떠한가? 발바닥이 대지의 어머니와 잘 입맞춤하고 있는가? 건강한 거리 두기로 내면에 ‘공간’을 확보하면 그 다음 무얼 해야 할지가 보인다.
“어떻게 스스로 감옥을 만들고 있는지를, 그 감옥을 구축하는 데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는, 치료에 아무런 진전을 볼 수 없다”고 얘기한 실존치료의 대가 어빈 얄롬. 감옥 안에서 시들어버리기엔 우리는 너무 큰 씨앗들이다. 자신의 모자람 이대로를 온전히 수용하고 사랑할 수 없는 이는, 남을 사랑하기도 쉽지 않다. 지극한 도(道)는 원래 이렇게 그닥 어렵지 않다.
활동 중 설사 억울한 일을 당했을지라도 도망치지 않고, 자신들이 행여 놓친 점은 없는지 돌아보고 팬들의 조언에 귀 기울이는 방탄소년단. 존재가 존재를 대하는 이 진실되고 겸허한 자세는 언제 어디서나 힘이 세다. 얼마나 많은 세계의 아미들은 이 ‘공간’을 통해 호흡이 깊어지고, 들끓던 자살 자해의 충동을 가라앉히며, 푹 안심하고 쉴 것인가! 그들의 이야기는 지금 ‘명상’처럼 숨 막히던 세상에 청량한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저는 다른 사람들처럼, 많은 흠이 있고, 그보다 더 많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저 자신을 온 힘을 다해 끌어안고 천천히, 그저 조금씩 사랑하려 합니다.”
스님 아미의 ‘가슴 눈’ 환히 열린 순간, 이미 조화롭다! 그랬다. 낭비된 시간도, 만나지 말았어야 좋았을 사람도, 배움 없는 흉터도 없었던 게다. 그저 ‘아무개’로 사라져버릴 뻔한 우리에게, 아이돌(우상)을 넘어 실상(實像)으로 내려와 준 방탄소년단이, 이제 묻고 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