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사제인 나는 매년 부활절 이후에 동료들과 함께 소위 엠마우스(라틴어식 표현, ‘엠마오’라고도 함) 여행을 떠난다. 긴 사순절 기간의 훈련을 보상 받는 듯한 마음으로 교무구 소속 동료들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 마치 엠마오를 떠나는 제자와 같다며 “엠마우스 수련회”라는 명칭을 붙이고 있다.
첫 날 저녁상에 421이란 숫자가 적힌 케이크가 준비되었다. 금년 8월11일로 은퇴하는 나를 격려하고자, 예쁘고 멋진 케이크를 준비했다. 동료들은 “서품 축하합니다.”라는 아름다운 화음으로 나를 축복해주었다. 1982년 4월 21일이 나의 사제서품일이다. 36주년간 자격도 안되는 놈이 수고했다며 ‘남은 기간 온 몸을 태워서라도 목회를 잘 마무리를 잘하라’는 응원의 케이크였다. 나는 “태움(?)”이라는 건배사로 응답했다. 남은 기간 저 자신이 열정적으로 헌신하겠노라는 다짐을 ‘마치 불을 태우며 살겠다’는 뜻으로 “태움”이라 외쳤다. 그렇다. 나는 죄인이다. 문제가 많은 사람이다. 매일 거듭나야 한다. 매일 새로워져야 한다. 날마다 새로운 각오와 다짐이 없다면 삶은 흐트러질 것이다.
둘째 날에는 교구장의 특사(?)인 구균하사제의 “건강한 교회와 사제”가 되어야 한다는 캠페인에 이은 열정적인 질문과 발언이 있었다. 북부지역 교회개척과 관련된 진행 상황 설명이 있었다. 또 교무구 내의 각 교회의 개척교회 모금 현황이 발표되는 순간, 교무구 내의 교회의 교회 개척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교구 공동체를 아프게 하는 여러 건에 대해 ‘우리도 한 몸입니다’,‘우리 몸을 치유할 사람은 우리입니다.’라며 각자의 방식대로 표현을 했다. 이번 수련회는 예산이 초과 집행되었고, 인원과 일정에 차질이 생기기도 했다. 예년에는 “영월문화유산 답사”, “원전관련 투어” 등의 주제가 있는 수련회였지만, 이번 수련회는 “쉼”속에 동료애를 키우는 수련회였다. 설악 한화콘도에 숙소를 정하고, 비교적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도록 했다. 이번 수련회는 빠듯한 수련회가 아니라, 여유로움과 너그러움이 가득한 자유롭고 편안한 수련회였다.
그런데 나는 이번 수련회에 대형사고를 냈다. 동료들과 인제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미시령 정상의 휴게소에서 커피타임을 갖고자 했다. 정상의 건물은 모두 철거되었다.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속초 시내와 동해바다는 장관이었다. 조수석에 탄 나는 봉고차의 앞문을 열었다가 닫을 수가 없었다. 엄청나게 강한 바람이 불었다. 조수석의 문이 ‘우지직’ 소리를 내며 제켜졌다. 동료 사제가 하차하여 겨우 문을 닫았지만, 조수석 앞문의 일부가 파손된 것이다. 정비 공장에 가서 수리를 해야 할 것 같다. 이 봉고차는 의정부교회(이한오신부님) 것이다. 참으로 미안했다. 죄송했다. 늘 상황 파악을 잘하지 못하는 나에게 이번 수련회는 늘 “상황 파악”을 잘하라는 교훈을 주었다. 물질적으로 피해를 입혔다. 이한오신부님은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고 했지만, 나는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이번 수련회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그 중 이태용신부님의 청소년 지도 때에 써먹은 “화폐조회기” 이야기와 박성순신부님의 미군부대 식당 “사모님 여권지침” 이야기는 생각만해도 재밌다. 특별히 나의 수련회 참가와 귀가를 위해 차량봉사해주신 대학로교회 박성순신부님, 강하니사제님께 감사드린다. 짧은 2박3일의 기간 동안 함께 하신 총사제 이수상신부님, 김현호총무신부님, 유재근 진행담당 신부님, 천상화 회계담당 신부님, 참가하신 동료 성직자님께 감사드린다. 끝
<수련회 기간 동안 다녀온 먹거리집와 찻집>
강릉솔향수목원
산촌~황태뚝배기(033-641-9230)
중앙갈비~삽겹살, 돼지갈비(033-633-6459)
옛골~물곰탕, 모듬 생선조림(033-631-5010)
심방터~송어회(033-462-5804)
보사노바커피숍~강릉 안목항 거피거리내(033-653-0038)
이목리막국수~막국수, 수육(033-638-3579)
진미식당~황태해장국(033-462-8866)
-석광훈모세, 2018년 4월 12일 목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