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나 꾸는 예언자는 꿈 이야기나 하여라.
그러나 내 말을 받은 예언자는 내 말을 성실하게 전하여라.”
하느님께서 박해받는 예언자 예레미야에게 하셨던 말씀입니다. 어떤 저항과 박해가 이어져도 예언자의 외침은 거짓된 현실을 폭로하고 바로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복음서의 예수님도 이 맥락, 참된 예언을 전하는 예언자라는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특히 종교지도자들은 보통 사람들의 굶주림과 탄압받는 민족 상황을 모른 채 했습니다. 자신들이 쥐고 있는 한 줌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지금 이대로 이스라엘이 이어지기를 바랐습니다. 밖으로는 로마라는 강대국이 나라 전체를 휘어잡고 있고, 내부로는 궁핍과 곤란이 끓고 있어지만 종교 지도자들은 이 모습에 두 눈을 감고 재건된 “성전 제사를 열심히 드리기만 한다면, 율법에 순종하기만 한다면, 고결한 신앙을 갖고 있기만 한다면” 괜찮다고 되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이 말하는 평화, 거짓 평화에 도전하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성전 정화 사건을 들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앙을 떠받치는 기둥, 성전에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는 그곳에서 희생 제사를 위한 동물들을 판매하던 상인들의 좌판을 엎으셨습니다. 또 동물을 사기 위해 돈을 바꿔주던 환전상들의 자리도 치워버리셨습니다. 당시 환전상들이 바꿔주던 동전, 성전에서 유일하게 통용되는 동전에는 띠로의 신 멜카르트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고결한 이스라엘의 신앙은 우상 숭배의 동전으로 지탱되고 있던 셈입니다. 예수님은 이 부정함을 뒤엎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의 평화, 두려움과 게으름으로 일궈진 자신들의 거짓 평화에 대항하는 예수님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주변 보통 사람들은 어땠을까요? 그들 역시 예수님을 참을 수 없던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은 예수님의 행동에서 위협을 느꼈습니다. “아, 이 사람이 우리 밥줄을 끊으려 하는구나!” 그들에게 예수님의 말과 행동은 “불”, 모든 걸 태워버리는 “불”과 같이 여겨졌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로 작정했을 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 산다고 마음 먹을 때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세상, 세상의 불의와 악한 현실, 누군가를 짓누르고 억압하는 상황, 누군가의 고통을 외면하는 실상과 맞닥뜨려야 합니다. 이를 외면한 채 신앙이 주는 안온함과 내적 평안에만 몰두한다면 우리는 예레미야를 박해하던 종교지도자들과 예언자들, 예수님을 힐난하던 지도자들과 예루살렘 주민들과 다를 바 없게 됩니다. 거짓 평화를 바라보는 눈, 참된 평화를 이루려는 의지, 그리고 손과 발로 조금씩 하느님 나라를 위해 다가서려는 우리의 노력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