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를 뿌리는 삶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일제 강점기에 민족의 비극과 의지를 노래하다가 옥사한 시인 이육사의 명시 ‘광야’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시인이기도 한 교사가 오랫동안 어린 학생들과 함께한 문학 수업 시간에 느낀 것을 전하는 책을 읽었는데, 이 시구에 관하여 토론하는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런 까닭인지 오늘 복음의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들으며 문득 이 시구가 떠올랐습니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이 시를 가르치며 일제 암흑기라는 시대적 배경과 이육사 시인의 고귀한 삶을 하나하나 설명합니다. 그는 이육사 시인에 대하여 ‘스스로의 삶을 씨앗으로 뿌린 이’였고, 자신의 삶 자체를 뒤에 올 이들을 위한 헌신이자 투신으로서 마흔이라는 짧은 생을 살았다고 알려 줍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이렇게 질문합니다. “너희도 이렇게 씨앗을 뿌릴 수 있겠니?”
이에 대한 한 학생의 솔직한 반응이 흥미 있는 토론을 이끌어 내는 계기가 됩니다. “대뜸 은수가 ‘저는 안 뿌릴 거예요.’ 한다. 툭 던지듯 목소리도 컸다. 그 도발적인 대답에 내 마음이 출렁했다. 씨앗을 ‘못’ 뿌리겠다는 마음은 이해가 되는데 ‘안’ 뿌리겠다고? 그것을 이리 당당하게 말한단 말이지? ‘씨앗을 안 뿌리겠다는 말은 용기가 없어서 못 뿌리는 것이 아니라 뿌릴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말이네?’ ‘내가 열매를 다 먹지도 못하는데 뭐하러 뿌려요?’ ‘흠, 그래? 그럼 네가 지금 따 먹고 있는 열매들은 다 네가 뿌린 씨앗이니?’ 아이는 순간 멈칫한다.”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말한 아이들은 다행히 이어지는 토론에서 누군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좋은 일, 올바른 일, 가치 있는 일의 씨를 뿌리는 것이 얼마나 귀한 삶인지를 조금씩 발견하고 인정해 갑니다. 교사인 저자도 아이들과 가진 이 대화 뒤 이러한 확신을 더해 갑니다.
조향미 시인의 『시인의 교실』에 나오는 이 이야기를 읽으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말씀의 씨앗이 떨어져 풍성한 열매를 맺는 비옥한 마음에 대하여 이렇게 새로이 깨닫습니다. 바로 자신의 이익과 안락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육사 시인이 그러했듯 다른 이들과 앞날을 위하여 묵묵히 ‘씨 뿌리는 사람’의 삶을 살아가는 마음이라는 사실입니다.